공정 바꾸고 대체품까지…'금값' AI메모리에 빅테크 대응 몸부림
엔비디아, 공정 표준화로 '주도권 잡기'?…삼성·하이닉스 득실은
물량 확대는 호재…"내년 HBM 평균가 100∼150% 상승" 전망도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인공지능(AI) 확산으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가격이 치솟자 글로벌 빅테크들이 메모리 조달 전략을 다변화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제조 공정을 통일하는 방식으로 '주도권 잡기'에 나섰고, 인텔은 AI 추론용 그래픽처리장치(GPU)에 HBM 대신 저전력 D램을 택하는 우회로를 모색하고 있다. 일부 업체들은 HBM 탑재량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는 '금값'이 된 HBM 공급 부족에 대응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메모리 호황을 누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차세대 맞춤형 HBM인 'NVHBM'의 핵심 구성품(베이스 다이)을 대만 TSMC 공정으로 일원화해 생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수직으로 쌓은 고성능 메모리로, 그래픽처리장치(GPU)로 대량의 데이터를 전송할 때 가장 밑에 깔리는 '베이스 다이'가 관제탑 역할을 한다.
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사업을 동시에 하는 삼성전자는 HBM 베이스 다이에 자체 첨단 파운드리의 공정을 적용해왔다.
그러나 엔비디아의 요구에 맞춰 'NVHBM'을 제조하려면 경쟁사인 TSMC 공정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로써 HBM 공급 물량을 확보할 기회가 생기지만, 자체 생산할 수 있는 베이스 다이 물량 일부가 TSMC로 넘어가는 건 부담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부터 반도체 설계·위탁 생산·패키징(후공정)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것을 강점으로 내세워왔다.
SK하이닉스의 경우 자체 공정으로 베이스 다이를 만들다가 6세대 HBM인 'HBM4'부터 TSMC 공정을 활용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공정 표준화는 제품 성능을 최적화하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등 업체 별로 다른 공정을 적용할 때 발생하는 검증·관리 부담을 줄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시장에서는 엔비디아가 메모리 제조사의 생산 방식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주도권 강화에 나섰다는 해석도 나온다.
제조 조건이 표준화되면 제품 비교와 물량 배분이 쉬워지고, 가격 협상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HBM을 놓고 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는 셈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지금은 메모리 부족이 워낙 심한 상태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제조 업체의 협상력이 더 높다"며 "메모리 수요자인 빅테크 기업들이 리더십을 자신들 쪽으로 끌고 오려는 시도는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메모리 가격 부담을 낮추기 위해 제품 설계를 바꾸는 '우회'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인텔은 최근 구체적인 사양을 공개한 AI 추론용 GPU 'D 시리즈'에 비싼 HBM 대신 저전력 D램을 대거 배치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일부 GPU 및 주문형반도체(ASIC) 업체는 기존에 계획한 12단 HBM 대신 8단 제품을 채택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8단 제품은 D램 사용량이 비교적 적어 비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는 미국 텍사스에 초대형 생산시설인 '테라팹'을 지어 아예 필요한 AI 반도체를 자체 조달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당장 HBM 수요와 가격 상승세를 꺾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2027년 HBM 평균 판매가격(ASP)이 올해보다 100∼150%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HBM과 범용 D램 가격이 동반 상승해 내년 1분기부터 메모리 가격은 두 자릿수 상승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빅테크들이 메모리 성능·비용과 공급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설계·조달 전략을 다변화하고 있지만, 당장은 공급 부족과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실적 및 가격 협상력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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