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시위 폭력 배후로 극좌 성향 세력 '블랙 블록' 의심
검은 옷 입고 공공시설 등 공격…SNS로 전술 공유하고 즉흥적 집결
이념 성향 약한 일반 참가자에도 전술 확산…당국 대응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김아람 기자 = 프랑스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폭력 사태로 번진 가운데 극좌 성향 세력 '블랙 블록'(Black Bloc)이 배후로 지목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블랙 블록은 지난 주말 프랑스 전역에서 벌어진 평화 시위가 광범위한 폭동과 약탈로 변질하는 데 일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블랙 블록은 수십년간 프랑스 시위 현장에 등장해왔다. 이념적으로는 무정부주의, 반자본주의, 반파시즘과 연관됐으며 정당이나 위계적인 조직 체계를 거부한다.
이들은 주로 검은 옷과 복면을 착용하고 경찰과 충돌하거나 자본주의 또는 국가의 상징물을 공격한다.
지난 17일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시위에는 약 50만명이 참여했다.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규탄하는 고등학생들의 시위에 일반 시민까지 가세해 치솟는 생활비 등에 항의했다.
파리에서는 공식 행진이 시작되기 몇 시간 전부터 출발 장소인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경찰을 향해 돌을 던지고 거리에 불을 질렀다.
시위 참가자들은 돈과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각종 시설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으며 프랑스 전역에서 상점 약 3천곳이 약탈 등 피해를 봤다.
프랑스 중부 리모주의 시청이 화염에 휩싸인 모습은 큰 충격을 안겼다. 당국은 화재 발생에 관여한 혐의로 극좌 세력과의 연계가 의심돼 감시 대상 명단에 올랐던 34세 남성을 체포했다.
이와 관련해 기욤 게랭 리모주 시장은 프랑스 일간 르몽드 인터뷰에서 극좌 활동가들이 공격을 위한 물자를 준비하고 사전에 계획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들에 대해 "폭죽과 박격포, 문을 부수는 데 쓰는 충각을 가져왔다"며 "그런 물건들을 그저 배낭에 넣고 다니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도 "일부 지역에서 극좌파가 주도하는 봉기성 행동이 계획됐다"고 밝혔다.
다만 프랑스 정부와 검찰은 극좌 세력이 약탈 등을 주도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아직 제시하지는 않았다.
FT가 인용한 소식통에 따르면 프랑스 극좌 성향 세력 가운데 폭력 행동에 나설 위험이 있다고 간주되는 인물은 약 5천명이다.
블랙 블록은 1980년대 서독의 급진 좌파 운동에서 시작돼 이후 반세계화 시위 등을 통해 확산했다. 프랑스에서는 2016년 노동법 개정 반대 시위를 계기로 세력을 키웠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와 암호화한 메시지 앱으로 전술을 공유하고 즉흥적으로 집결하는 경우가 많고, 조직적인 지도부나 체계가 없어 당국이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전문가들은 블랙 블록의 전술이 이념적 성향이 강하지 않은 일반 시위 참가자들에게도 확산하면서 당국의 대응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랙 블록의 정신세계' 저자 티에리 뱅상은 "블랙 블록 활동가들을 다른 시위 참가자들과 단절된 과격분자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며 "실제로 그들은 확산하고 있는 광범위한 사회적 분노를 가장 눈에 띄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유럽 극우 정치인들은 이번 폭력 사태를 이민 정책 실패에 따른 혼란으로 규정하고 있으나, 이민자들이 폭동을 주도했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ric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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