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치받은 젤렌스키, '유일한 기댈 언덕' 유럽에 절박한 구애(종합)

입력 2026-10-16 19:12
수정 2026-10-16 19:37
트럼프 치받은 젤렌스키, '유일한 기댈 언덕' 유럽에 절박한 구애(종합)

바닥난 자금·무기 지원 호소…EU 지도자들, 일단 전폭적 지지 표명

러 정유시설 공습 재개도 엄호…EU 정상회의 첫날, 핵심사안 합의 불발





(브뤼셀=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기댈 언덕' 유럽에 찾아가 고갈돼 가는 무기와 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어진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 초청받아 EU 27개 회원국 지도자, EU 수뇌부와 회동해 내년 2월이면 꼭 5년을 채우는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공유하고, 유럽의 지원을 호소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회의장에 도착해 기자들에게 "우리는 이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끝내고 싶지만, 현재 러시아가 전쟁을 끝낼 준비가 돼 있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런 이유로 인해 우리는 올겨울을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필요로 하는)겨울철 지원에는 에너지뿐 아니라 방공망과 자금 지원도 포함된다"면서 이날 회의에서 올해 남은 기간과 내년까지 우크라이나의 필요 사항들을 논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젤렌스키의 이날 브뤼셀 방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습을 재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하는 등 양측의 파열음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는 와중에 이뤄진 것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상승으로 인한 민심 악화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러시아산 경유를 미국과 세계 시장에 공급하겠다는 '경유딜'을 깜짝 발표하고, 일방적으로 '에너지 휴전'을 발표하자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에 공개적으로 반발하면서 양측의 갈등이 고조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반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크라이나 대통령 교체 필요성을 언급하는가 하면, 우크라이나에 군사 정보 지원을 중단하는 등의 대응으로 압박 수위를 더 높이고 있다.



유럽 정상들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 이처럼 대놓고 반기를 드는 모습에 내심 당혹스러워하면서, 수위 조절을 요청하려 한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전날 보도한 바 있다.

이날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일단 유럽 정상들은 러시아의 거센 미사일·드론 공세에 미국의 압박까지 안팎으로 어려움에 놓인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안토니우 코스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과 나란히 서서 기자들에게 "지금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철회하거나,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완화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야 할 때"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조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재확인했다.

유럽 정상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정유시설에 대한 공격을 재개한 것도 엄호했다.

카야 칼라스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러시아의 전쟁 자금 대부분은 석유 수익에서 나온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이 전쟁이 멈추기를 원하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쟁 자금 지원을 끊는 것은 이를 위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텐 미할 에스토니아 총리도 "러시아의 모든 정유 시설과 에너지 판매 역량이 산산조각 날수록 더 좋다"고 거들었다.

롭 예턴 네덜란드 총리는 "우리는 우크라이나인들과 굳게 연대하고 있으며, 그들은 우크라이나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드리스 쿨베르그스 라트비아 총리는 이날 블룸버그 TV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젤렌스키에게 남은 동맹은 유럽인들뿐이다. 오늘 논의할 가장 중요한 사안은 그가 이번 겨울을 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이다. 모든 것이 이번 겨울에 달려 있다"고 말해 이날 회의의 최우선 의제가 우크라이나 지원 방안이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하지만, 유럽 대부분의 국가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는 등 국내 사정이 좋지 않은 만큼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이 결코 녹록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EU '쌍두마차'인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을 주장하는 극우 정당들이 약진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경우 대규모 재정 적자로 인한 예산 삭감에 대규모 고교생 시위가 전국을 휩쓸고 있는 터라 내부 문제를 수습하기에도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바르트 더 베버르 벨기에 총리는 이날 "젤렌스키 대통령이 아마 모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면서 '그동안 900억 유로를 지원해 줘서 고맙지만, 전쟁이란 워낙 비용이 많이 드는 만큼 곧 그 돈도 바닥날 것'이라고 말할 것"이라며 "그렇다면, 유럽의 일원으로서 우리는 말뿐 아니라 실제로 재정적 지원을 제공할 의지와 준비가 돼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더 베버르 총리는 "우리가 우크라이나를 계속 지원하고 우크라이나 사회와 방어 체계가 계속 유지될 수 있도록 뒷받침할 역량이 있느냐"고 되물어 이날 논의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예턴 네덜란드 총리도 "우크라이나에 새로운 재정적 지원을 약속하겠다고 나선 국가들의 수가 만족스럽지 않다"면서 "조만간 여러 국가가 추가적인 군사 지원을 약속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EU 정상회의 첫날이었던 전날에는 에너지 위기 대응,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 EU 확대, 2028~2034년 장기예산안 등을 의제로 회의가 진행됐다.

폴리티코 유럽판은 이날 14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가 이어졌으나, 장기 예산안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등에서 회원국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핵심 사안에 대한 합의가 불발됐다고 전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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