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챗GPT가 전부는 아니다…아프리카의 다른 AI 혁명

입력 2026-10-15 07:00
[우분투칼럼] 챗GPT가 전부는 아니다…아프리카의 다른 AI 혁명

최두영 고려대 아프리카연구센터 부센터장



[※ 편집자 주 = 연합뉴스 글로벌문화교류단이 국내 주요 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2024년 5월, 케냐의 미래는 지열 에너지로 가동될 데이터센터 안에 있는 듯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랍에미리트(UAE)의 AI 기업 G42가 10억 달러(약 1조3천600억원) 규모의 디지털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동아프리카를 연결할 클라우드 거점에 현지 언어 AI 개발과 인재 양성까지 아우른 프로젝트였다. 케냐가 글로벌 AI 산업의 새로운 거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커졌다.

그러나 2년이 지난 2026년 봄, 이 사업의 발목을 잡은 것은 전기였다. 전력 공급 불안과 계약 조건을 둘러싼 잡음으로 사업 지연 보도가 잇따랐다. 케냐 정부는 사업 중단설을 부인하면서도 발전 능력 확충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투자 청사진과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이 드러난 것이다. 가장 앞선 첨단 기술조차 가장 기초적인 물리적 인프라를 건너뛸 수는 없었다.

이 장면은 아프리카가 마주한 AI 경쟁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전력 공급이 불안정한 병원에서도 작동하는가. 통신비가 부담스러운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가. 영어 대신 스와힐리어로 질문해도 정확한 답을 내놓는가. 거대한 모델을 만드는 경쟁만으로는 이 질문들에 답할 수 없다.



◇ 거대한 모델 밖에서 움트는 혁신

세계은행(World Bank)의 2025년 보고서를 보면 격차는 선명하다. 고소득 국가들이 주요 AI 모델의 87%, AI 스타트업의 86%, 누적 벤처 투자의 91%를 각각 차지한다. 서버 공간과 전력을 제공하는 코로케이션 데이터센터 용량 역시 77%가 고소득국에 쏠려있다. 저소득국의 몫은 0.1% 미만이다.

이런 조건에서 세계은행이 주목하는 대안이 '작은 AI'(Small AI)다. 비교적 적은 연산 자원으로 일상의 기기에서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다. 모든 나라가 최첨단 거대 모델 개발에 같은 규모의 자본을 투입해야만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실제 움직임도 있다. 남아공의 렐라파AI(Lelapa AI)는 스와힐리어와 요루바어 등 아프리카 5대 언어를 지원하는 소형 언어모델 '인쿠바LM'을 개발했다. 나이지리아의 인트론(Intron)은 현지 고유의 억양을 인식하는 음성 AI를, 가나의 미노헬스(minoHealth)는 흉부 엑스레이 판독을 돕는 보조 AI를 개발 중이다.

이 기술들이 모두 작은 모델이거나 인터넷 없이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공통점은 사용자의 언어와 현장의 필요를 출발점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빅테크의 벤치마크 순위표에 보이지 않는 진짜 혁신이다.

물론 자금 사정은 여전히 가혹하다. 아프리카 스타트업 지원기관 디지털 아프리카(Digital Africa) 분석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투자를 유치한 194개 기업 중 AI 관련 기업의 조달 비중은 14% 수준에 그쳤다. 제품의 핵심이 AI인 'AI 네이티브' 기업의 비중은 2%에도 미치지 못했다. 아프리카의 AI 산업을 글로벌 투자 열풍과 같은 틀로 이해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 4%와 0.4% 사이, 전기와 사람

작은 AI가 인프라의 절대적 부족까지 없애주지는 않는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진은 2026년 7월 보고서에서 기반 여건을 개선하고 AI 활용을 넓히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향후 10년간 GDP 추가 제고 효과가 누적 4%에 이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준비 수준을 전제로 하면 0.4%에 그친다.

이 차이를 가르는 것은 모델의 크기가 아니다. 세계은행은 전력·통신을 포함한 연결성, 연산 능력, 현지 언어와 데이터, 그리고 활용 역량을 AI의 4대 토대로 제시한다. 컴퓨터를 들여놓는 것과 농민ㆍ의료진ㆍ공무원이 그 컴퓨터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별개의 과제다.

막대한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도 현지 기업이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면 활용은 제한된다. 고유 데이터가 없으면 답변의 정확도도 떨어지고, 기술을 다룰 사람이 없으면 유지보수까지 외부에 의존하게 된다. 결국 AI를 보유했다는 사실보다 누가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지는 이유다.



◇ 정책을 쓸 AI보다 정책을 검증할 사람

남아공에서는 이 문제가 뜻밖의 사건으로 드러났다. 남아공 정부가 최근 공개한 국가 AI 정책 초안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참고문헌이 다수 포함된 것이다. 담당 장관은 검증 없이 AI의 환각(hallucination) 답변이 인용했음을 시인하며 초안 철회를 발표했다. AI를 관리할 국가 정책조차 AI의 오류를 걸러내지 못한 채 만들어진 셈이다.

이 사건은 규제의 필요성을 약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규제를 실행할 역량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그럴듯한 문장을 생산하는 속도와 그 문장이 사실인지 판단하는 능력은 다르다. 법과 지침을 만드는 일에는 이를 검토할 공무원과 연구자, 책임을 물을 절차가 함께 따라야 한다.

아프리카연합(AU)이 2024년 채택한 대륙 AI 전략도 위험 관리와 역량 구축을 함께 다룬다. AI를 장기 발전 구상인 '어젠다 2063'의 실현 수단으로 보고, 인프라·인재·투자·협력을 연결한다. 규제와 산업 육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접근이다.

가나의 '국가 AI 전략 2025∼2035'도 같은 과제를 안고 있다. 정부는 2026년 4월 전략 출범과 함께 2억5천만 달러(약 3천400억원) 규모의 AI 컴퓨팅센터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데이터 관리와 디지털 교육, 윤리적 안전장치도 주요 과제로 묶었다. 다만 발표된 투자액이 실제 시설과 일자리로 이어질지는 집행 과정에서 확인해야 한다.

이를 '생태계 형성형 AI 거버넌스'라고 부를 수 있다. 개인정보를 보호하면서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고, 안전성을 점검하면서 기업이 기술을 시험할 기회를 만드는 방식이다. 규제와 육성을 어느 순서로 할지보다 두 과제를 수행할 제도적 능력을 어떻게 함께 키울지가 관건이다.

◇ 한국이 함께 만들어야 할 것

한국과 아프리카의 협력도 이 지점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전자정부, 의료기기, 제조업, 농업기술을 현지의 수요와 연결하는 것이다. 병원의 영상 판독을 돕고, 중소기업의 불량을 줄이며, 농가의 병충해 판단을 지원하는 사업은 저마다 구체적인 협력 과제가 될 수 있다.

협력의 성패는 완성된 제품을 얼마나 많이 공급했는가로 판단하기 어렵다. 현지 대학과 기업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데이터를 함께 구축해야 한다. 소규모 실증으로 효과를 검증한 뒤 공공 조달과 연결하고, 인접국 시장으로 확대하는 경로를 마련할 수 있다. 데이터의 권리와 활용 수익, 운영 책임을 나누는 방식도 처음부터 협의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를 하나의 시장으로 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같은 의료 AI라도 언어와 진료 환경, 데이터의 축적 정도에 따라 활용 조건이 달라진다. 현지화는 번역을 추가하는 작업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문제를 먼저 풀지, 결과를 누가 검증할지까지 현장의 주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실증이 끝난 뒤가 중요하다. 지원금이 끊겨도 병원이 사용료를 감당할 수 있는가. 현지 기술자가 오류를 고칠 수 있는가. 협력의 성과가 현지 기업의 매출과 일자리로 이어지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일회성 시범 사업을 넘어설 수 있다.

아프리카의 AI 혁명을 낙관적인 도약의 이야기로만 그릴 수는 없다. 국가마다 출발점이 다르고, 전력과 자본의 격차도 크다. 그러나 실리콘밸리식 거대 챗봇을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혁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한 지역의 언어를 이해하고, 병원의 판단을 돕고, 농민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기술이야말로 가장 단단한 가치가 있다.

챗GPT가 전부는 아니다. 아프리카가 던지는 질문은 AI의 크기를 넘어선다. 가장 필요한 곳에서, 감당할 수 있는 비용으로, 누가 그 기술을 사용하는가. 한국이 아프리카와 함께 답해야 할 질문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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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두영 박사

현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원 아프리카연구센터 부센터장,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겸임교수, 국제개발협력학회 아프리카위원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경제학 박사. 주에티오피아 대사관 전문직 행정원 역임, '아프리카 비즈니스 환경과 시장 진출 전략', '동아프리카 스타트업 시장분석' 등 아프리카 경제 및 디지털 전환에 관한 다수 논문과 보고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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