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아냐"…'티메프' 사태에 이커머스업계 긴장 고조(종합)
허약한 재무구조가 촉매…경쟁사들도 재무 건전성 문제
체질 개선 작업 박차 가할 듯…"이커머스 재편 신호탄"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티몬과 위메프의 대규모 판매대금 정산 지연 사태를 바라보는 국내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업계의 심정은 편치 않다.
경쟁사들은 '결국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 속에 남의 일이 아니라며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2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이번 사태 이면에는 티몬·위메프의 허약한 재무 건전성이 자리 잡고 있다.
티몬과 위메프는 수년 전부터 매년 막대한 영업손실을 기록해왔다.
2022년 기준 티몬의 자본총계는 -6천386억원이다. 결손금은 1조2천644억원에 달한다. 결손금은 영업 활동에서 발생한 누적 손실액을 말한다.
지난해 위메프 자본총계는 -2천398억원, 결손금은 7천560억원이었다.
위메프는 2019년 5천287%의 부채비율을 기록한 뒤 2020년부터 줄곧 자본잠식 상태에 있다. 티몬의 부채비율도 2019년 이래 120% 안팎을 보이고 있다.
두 기업의 외부 감사인은 나란히 '계속기업으로서의 존속 능력이 불확실하다'는 감사 의견을 냈다.
이런 재무 상황은 이번 사태의 폭발력을 키운 빌미가 됐다.
위메프는 판촉할인율 오류를 이유로 이달 8일 정산일에 400개 안팎의 판매자에 대한 대금 지급을 일시 중단했다.
사실 위메프는 당시 정산금 지급 여력이 충분했다고 한다. 해당 판매자들에게도 판촉할인율 오류를 바로잡는 대로 정산을 재개하겠다고 개별 공지했다.
하지만 문제는 티몬에서 터졌다. 위메프의 정산 일시 중단에 불안을 느낀 티몬 입점 판매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순식간에 자금 경색이 온 것이다.
재무 구조가 위메프보다 훨씬 허약한 티몬은 그동안 '판매대금 돌려막기'로 간신히 정산일을 맞춰왔다.
하지만 거래 규모가 큰 중대형 판매자가 이탈하자 돌려막기 시스템이 더는 작동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위메프의 정산 지연 사실이 알려진 지난 11일부터 티몬이 정산 지연을 공지한 지난 22일까지 걸린 기간은 보름이 채 안된다.
이 짧은 기간에 월평균 거래액(올해 상반기 기준)이 6천억원대(티몬), 3천억원대(위메프)인 거대 종합 이커머스 플랫폼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업계에서는 싱가포르에 기반을 둔 모기업 큐텐이 지난해부터 일부 판매대금 정산을 지연한 점과 티몬과 위메프의 부실한 재무 구조가 판매자들 사이에서 빠른 속도로 알려지면서 불안감이 증폭한 게 사태의 촉매제가 된 것으로 본다.
업계 관계자는 "정산 못 받은 판매자는 물론 제때 정산받은 중대형 판매자들까지 동요하며 썰물처럼 플랫폼을 빠져나가면서 결국 티몬이 지급 불능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 추이를 지켜본 경쟁사들도 재무 건전성 문제를 안고 있어 티몬과 위메프 사태를 강 건너 불 보듯 할 수 없는 상황이다. 11번가, 컬리 등은 최근 수년간 매년 1천억원 안팎의 영업손실을 기록했고 신세계그룹 계열인 G마켓도 2022∼2023년 누적 1천억원에 가까운 영업손실을 냈다.
기업의 단기 재무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순운전자본(유동자산+유동부채)을 보면 지난해 기준 G마켓만 414억원으로 플러스를 보였고 11번가는 -1천65억원, 컬리는 -446억원이었다.
지난해 처음 연간 1천억원대 영업이익 흑자를 낸 쿠팡도 그동안 매년 적자를 낸 여파로 지난해 순운전자본이 -1조4천942억원에 이른다.
이번 사태 여파로 이커머스 플랫폼의 재무 건전성에 경각심을 갖게 된 판매자들로서는 어느 플랫폼에서 거래하든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는 "티몬·위메프 사태 이후 '너희는 괜찮냐'는 취지의 판매자 문의가 많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간이 갈수록 격화하는 이커머스 업계 출혈 경쟁으로 이런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는 데 있다.
각 업체는 그동안 진력해온 외형 키우기 시도를 접고 지난해부터 일제히 비용 절감을 통한 내실 다지기로 방향을 틀었지만, 가시적인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초저가 상품을 내세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한국 시장 진입으로 가격 경쟁이 더 심화한 것도 부정적인 요소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이커머스 시장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판매자와 고객이 좀 더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몰려들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네이버와 쿠팡 같은 대형 이커머스업체나 상대적으로 거래 안전성이 담보된 롯데와 신세계 등 국내 대기업 계열 이커머스로의 쏠림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큐텐은 판매자와 소비자 신뢰를 잃은 이상 이용자 이탈은 불가피하다"며 "7조원을 넘는 것으로 추정되는 큐텐그룹 총거래액(GMV)은 경쟁 오픈마켓으로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이커머스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커머스 시장에서 플랫폼과 판매자 및 소비자 간 거래 관계에서의 '신뢰'가 최우선 가치로 떠올랐다"며 "이는 각 플랫폼이 재무 개선 노력에 박차를 가하는 채찍이 될 수도 있다"고 짚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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