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1심 무죄…반도체 업턴에 사법리스크도 던 삼성
별도 입장 없이 차분…'핵심 쟁점 충분히 소명' 판단한듯
반도체 업황 회복 국면에 '가벼워진 행보' 기대감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김아람 기자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5일 삼성은 판결에 대해 별도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다만 그간 삼성을 옥죄고 있던 '사법 리스크' 부담은 상당 부분 덜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의 항소 가능성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실형이든 집행유예든 총수가 유죄 판결을 받는 상황과 비교하면 그룹의 대외 이미지 관리나 경영 수행에 운신의 폭이 넓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작년 11월 검찰이 결심공판에서 이 회장에게 징역 5년을 구형하자 삼성 내부에서는 예상보다 구형량이 많다며 당혹스러워하는 반응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쟁점이 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이 회장 개인 이익과 무관했고 이 회장이 합병 과정에 관여하지도 않았다는 소명에 최선을 다했다며 최소한 집행유예는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분위기도 있었다.
이날 선고공판을 방청한 삼성 관계자들은 '이 회장의 모든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재판부의 판단이 나온 뒤 담담한 표정으로 공판정을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선고 이후 변호인단이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힌 점을 고려하면 삼성 내부에서도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에 관한 정당성 소명이 충분히 이뤄졌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보인다.
학계 일각에서는 무죄 판결이 애초 예상된 결과라는 말도 나온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본시장법 규정에 따라 합병 비율을 계산한 것이고, 법 규정을 따랐다면 이를 범죄로 봐서는 안 된다"며 "검찰 주장처럼 경영권 승계를 위해 이 회장에게 유리하고 다른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비율을 책정했다고 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례 없는 불황을 겪은 반도체 부문을 회복 궤도에 올리는 중이고,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확실한 경영 환경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는 삼성이 판결을 계기로 한층 더 가벼운 행보를 보일지 주목된다.
앞서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이 회장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이 수시로 검찰과 법원을 드나들고 일부는 구속되는 등 삼성으로서는 정상적 경영 활동이 어려운 상황이 이어졌다.
지금도 삼성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인텔에 반도체 공급사 매출 1위 자리를 내줬고, 근소한 차이이긴 하나 스마트폰 출하량에서도 애플에 뒤진 2위를 차지하는 등 핵심 사업 분야에서 경쟁사에 밀렸다.
주력 사업 부문인 반도체는 지난해 15조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다.
메모리반도체 감산 효과와 전방 수요 회복 등에 힘입어 작년 4분기에는 D램이 흑자로 돌아섰지만,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전체로는 여전히 2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올해는 정보기술(IT) 수요 회복 흐름 속에 최대한 실적 회복을 추진하면서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관련 핵심 제품 개발과 공급에도 전력을 쏟아야 하는 중요한 시기다.
이런 상황에서 유죄 판결로 총수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된다면 중요 투자에 관한 판단, 인재 영입,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해외 네트워킹과 대규모 인수합병(M&A) 등에 속도를 내기도 어려워진다.
실제로 삼성은 2017년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이 회장이 구속되기 전 미국 전장(차량용 전기·전자장비)업체 하만을 인수한 이후로는 이렇다 할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은 그간 피고인 신분으로 재판에 출석하느라 해외 출장 일정을 잡는 데도 제약이 많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에게 사법 리스크가 생기면 그룹의 모든 관심은 사업보다 '총수 구명'에 집중된다"며 "미래 성장동력 발굴과 대규모 투자 판단 등은 5∼10년을 내다보는 총수의 결단이 필요한 영역이고, 1∼2년을 보는 전문 경영인에게 이런 역할을 맡기기란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TSMC가 강적으로 버티고 있고 미국 반도체 업체와 일본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이 선전하는데 삼성은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혀 의사결정 속도와 질이 떨어지면서 경쟁력이 약화했다"며 "이제 모래주머니를 내려놨으니 앞으로 나아가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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