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주 52시간제 개편, 유연성 높이되 노동계 우려도 반영해야

입력 2022-11-18 14:47
[연합시론] 주 52시간제 개편, 유연성 높이되 노동계 우려도 반영해야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추진하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안의 윤곽이 공개됐다. 정부 정책 자문 기구인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17일 연장 근로시간 관리 기간을 현행 주 단위에서 월 이상 단위로 바꾸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 52시간제 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2018년 도입된 주 52시간제는 기본 근로시간 40시간을 넘는 연장 근로시간을 12시간 이내로 제한하고 있으나 연구회의 설명대로 개편이 이뤄질 경우 주당 근로시간이 최대 69시간으로 늘어나게 된다. 지난 7월 출범한 연구회는 다음 달 13일 노동 개혁 정책 권고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주 52시간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고 정부의 의뢰를 받은 연구회도 비슷한 인식인 만큼 정부가 이 권고문을 토대로 개편안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제도 개편을 추진하는 것은 경직적인 근로시간 제도가 합리적인 인력 운용을 어렵게 해 기업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더 나아가 국가 경쟁력에까지 악영향을 준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현 제도에서는 직종이나 경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업무가 특정 시기에 집중되면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새 제품 출시를 앞둔 게임 회사, 감사 시즌에 일이 몰리는 회계 법인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 기업도 수주가 급증했는데 근로시간 규제 때문에 납기를 맞추지 못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 52시간제로 실질 임금이 줄었다는 노동자들의 하소연도 간간이 들린다. 다른 주요국과 비교해도 우리나라의 연장 근로시간 규제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 연구회는 주 52시간제가 "다양한 시장 상황이나 노동 과정의 특성을 고려한 체계적 준비 없이 도입됐다"면서 "이로 인한 산업 현장의 적응 비용은 현재도 지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는 주 52시간제 무력화를 우려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문제가 확인된 만큼 제도를 현실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하지만 효율에 집중하다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가치들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제도를 유연화하되 장시간 노동의 폐해를 극복하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한다는 주 52시간제의 취지는 더욱 잘 살려야 하는 이유이다. 특히 기업들 사이에서 '이제 52시간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식의 분위기가 조성되는 일은 절대로 없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대에 불과하고 중소기업의 경우에는 노조가 있더라도 교섭력이 약한 것이 현실이다. 법과 제도를 통한 규제가 느슨해지면 여기저기서 장시간 노동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연간 근로시간은 이미 지난해 기준 1천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천716시간보다 200시간가량 많다. OECD 회원국 중 한국보다 근로시간이 긴 나라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뿐이고 독일과의 격차는 무려 566시간이다. 경제 발전 단계, 창의가 중시되는 4차 산업혁명의 성격,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원하는 흐름 등에 비춰 근로시간 단축은 피할 수 없는 대세이다.

주 52시간제 개편은 이런 상황을 충분히 고려해 추진해야 한다. 연구회는 연장 근로시간 제도의 변화 외에 충분한 휴식 보장을 통한 근로자의 건강 보호, 근로시간 저축 계좌제 도입, 다양한 휴가 사용 활용 등도 제시했는데 바람직한 방향인 만큼 정책에 적극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노동계 역시 무조건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노동자의 권익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문제를 개선할 방법은 없는지 함께 머리를 맞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최근 주 52시간제 개편 논의에서는 노동계가 빠져 있는 듯하다. 정부는 노동계와 공식 대화 창구를 통해 이 사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고 혹시 불필요한 오해나 지나친 우려가 있다면 풀어주는 과정을 거치길 바란다. 교수들로만 구성된 연구회의 권고문을 토대로 일방적으로 개편안을 내놓을 경우 노동계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설사 개편안이 대체로 타당하고 노동자들에게 그리 불리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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