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수낵" 뉴델리부터 유럽까지 인도계 환호
로이터 "문화적 이정표" 평가
보통 사람들과 공감대 부족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인도계인 리시 수낵이 첫 비(非)백인 영국 총리로 25일(현지시간) 취임을 앞두면서 인도계를 포함한 아시아계 영국인들이 환호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이는 영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 혼란과 정치적 소란을 넘어서서 돋보이는 문화적 이정표로 평가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설명했다.
로이터는 "인도계 이민자의 아들이며 힌두교 신자인 수낵이 영국 의회 다수당인 보수당의 대표를 선출하는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힌두교 달력에 따른 새해 축제 '디왈리'를 즐기는 인파가 가득한 인도 뉴델리의 거리로부터 런던 서부의 쇼핑 거리에 이르기까지 환성이 일었다"고 강조했다.
영국에 42년 살았고 연금 수급자인 아스마 초우드리는 사우스홀 하이 스트리트에서 만난 로이터 기자에게 "그러고 보니 오랜 세월이 흘렀다"며 "다문화 사회에 살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25세 사업가인 리샤브흐 샤르마는 "인도인으로서 자랑스럽다. 그(수낵)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또 "(영국 국내보다) 더 먼 곳을 보자면, 수낵이 (총리직에) 오르면서 영국해협 너머 유럽대륙에서도 찬탄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며 "이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래 드물어진 일"이라고 전했다.
유럽의 한 고위 외교관은 로이터 기자에게 "수낵이 첫 아시아계 영국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점이 특기할만하다"며 "이 점이 영국에서 아무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매우 흥미롭다"고 평했다.
그는 "만약 프랑스나 영국에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 경우는 훨씬 더 복잡할 것이다. 나는 이 점이 무척 주목할만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정치적 입장 차가 큰 이들도 수낵의 총리 취임이 역사적으로 주목할만한 일이라는 점에 동감했다.
야당인 스코틀랜드 노동당 대표인 아나스 사르와르는 트윗으로 "우리 조부모들이 영국에 정착했을 때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일"이라고 말했다. 사르와르의 부모는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이었다.
수낵 총리 내정자의 조부모와 부모는 사회적 격변기였고 인종차별이 횡행하던 1960년대에 영국으로 이주했다. 수낵의 부모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인도계 힌두교인이었다. 당시 인도계는 영국에서 소수였으나 수가 늘어나고 있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으로 인종상 인도계인 주민 166만명이 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살고 있었다.
수낵은 잉글랜드 남부에서 태어났고, 명문 사립고인 윈체스터 칼리지를 나와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금융업계에 뛰어들었으며,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경영전문석사(MBA)를 받았다. 그는 스탠퍼드에서 인도 정보기술(IT) 대기업 '인포시스' 창업자 나라야나 무르티의 딸 악샤타 무르티를 만나 결혼했다.
이 때문에 수낵은 가장 재산이 많은 영국 의회 의원 중 하나다. 영국 신문들은 정파적 입장과 무관하게 그의 인종적 배경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42세)와 엄청난 재산에도 주목하고 있다. 그가 명문대를 나왔고 엄청난 부자이기 때문에 인종차별 장벽을 뛰어넘는 것이 남들보다 더 쉬웠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싱크탱크 '브리티시 퓨처'의 소장인 순데르 카트왈라는 "영국 정치에서 달라진 점이라면, (능력을 입증할만한) 적절한 전문적 이력을 가진 사람에게는 인종·종교·성별을 넘어서 전보다 개방적이 되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공인회계사이며 보수당원인 리시 트리베디(50)는 수낵이 총리가 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기쁘다"면서도 재산이 많은 수낵이 일반인과의 공감대가 없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트리베디는 수낵에 대해 "글로벌 엘리트의 일부"라며 "나처럼 직장에 출근해서 나와 같은 문제들을 맞닥뜨리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벽화 화가이며 보수당원인 지그네시 파텔(49)은 수낵의 당선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며 "인도인으로서,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고, 여기 와서 일을 하고 세금을 내고 돈을 벌지만, 우리는 어떤 이유에선지 정치와는 매우 멀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념이 무엇이든, 인도인(인도계 영국인들)이 정치의 일부가 될 때가 되었다고 진심으로 믿는다"며 "문제가 있다면 우리가 그냥 불평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되고, 문제 해결에 참여하기도 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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