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장 공략하는 엔씨소프트…현지화 돕는 외국인 직원들
외국 게이머에 맞춰 캐릭터 이름·디자인 바꾸고 콘텐츠 설계도 손질
본사 외국인 직원 46명…한국 직원들과 함께 야근하며 술도 한잔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다수의 신작 게임 발매를 앞둔 엔씨소프트[036570]가 국내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현지화에 집중하고 있다.
연합뉴스는 최근 엔씨소프트 본사에서 사업, 현지화, 인공지능(AI) 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외국인 직원들을 만나 게임 현지화 작업의 현황을 들어봤다.
◇ 이슬람권 이용자·아메리카 원주민 고려해 몬스터 이름·디자인 바꿔
"다양한 문화권과 배경을 가진 이들 누구나 게임을 하면서 '환영받는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죠."
게임 속 각종 텍스트와 사용자환경(UI)을 편집하는 컬처라이제이션실에서 근무하는 로렌 구아르디아 씨는 게임 현지화 작업의 주요 과제를 이같이 밝혔다.
게임의 각종 설정이나 디자인에 정치적·종교적·인종적으로 민감한 요소가 없는지 검토하고, 다양성을 고려해 다듬는 것이 컬처라이제이션실의 주 업무다.
로렌 씨는 대표적인 현지화 사례로 '리니지W'의 보스 몬스터 '바포메트'가 영문판에서는 '카프리커스'(Capricus)로 개명된 것을 들었다.
기독교 전승에 나오는 악마의 이름이 이슬람 문화권 이용자에게 거부감이 들 수 있다는 점을 고려, 종교적 텍스트와 무관한 단어로 교체했다.
로렌 씨는 "개발 중인 미공개 프로젝트에 나오는 적들이 북미 원주민을 연상시키는 머리 장식을 하고 있었는데, 인종 차별로 여겨질 수 있어 개발팀에 건의해 바꾼 적 있다"고도 전했다.
게임 속에 반영된 한국 문화를 자연스럽게 번역하는 것도 주된 관심사다.
그는 "리니지2M에서 '추석'을 어떻게 영어로 옮길지 논의를 많이 했다. 처음에는 북미권의 추수감사절에 빗댄 'Korean Thanksgiving'으로 하려고 했으나, 추석과 추수감사절은 명백히 다른 명절인 만큼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며 "결국 한국어 발음 그대로 'Chuseok'으로 번역했다"고 개발 과정의 일화를 소개했다.
◇ "한국식 MMORPG, 해외에도 팬층 있어…해외 이용자 맞춰 콘텐츠 설계"
각국마다 다른 게이머들의 성향 차이도 현지화 과정에서 고려할 요소다.
북미 개발 자회사를 비롯해 해외 퍼블리셔와의 협업 업무를 담당하는 마크 하프너 씨는 한국 게임시장의 특성에 대해 "콘솔·패키지 게임보다는 PC방을 중심으로 게임 문화가 발전했고, 또 정보기술(IT) 강국인 만큼 상시 온라인 상태를 요구하는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나 소셜 게임이 성공을 거뒀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런 환경에서 나온 '리니지' 같은 한국식 MMORPG는 해외 게이머들에게 다소 생소한 장르지만, 경쟁적이고 PVP(플레이어 간 전투)를 즐기는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나름의 팬층이 있다"고도 전했다.
국내에서는 대세인 게임이라도 해외에 나가면 '틈새시장'이 되는 만큼, 현지 이용자에게 맞는 콘텐츠 설계도 필수다.
마크 씨는 "해외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길드워2'의 경우 경쟁적인 PvP 요소도 있지만 높은 자유도를 바탕으로 이용자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와 시스템에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그는 엔씨소프트의 차기작 '쓰론 앤 리버티'(TL)에 대해 "TL은 글로벌 시장을 노리고 만든 게임인 만큼 한국 유저는 물론 전 세계에 호소하는 게임이 될 수 있도록 기획하고 있다. 엔씨소프트 본사는 물론 북미지사 'NC 웨스트'도 내부 테스트에 참여해 피드백을 주고받고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같은 서버에 모였을 때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언어이해기술실에서 근무하는 연구원 매터슨 앤드루 씨는 많은 분량의 한국어 문장의 문맥을 빠르게 분석할 수 있는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리니지W에는 게임 내 채팅에 실시간 번역기를 도입했는데, 여기에 AI를 활용한 자연어 처리(NLP) 기술을 적용해 더욱 자연스럽고 빠른 번역을 제공할 수 있도록 연구 중"이라고 전했다.
◇ "한국인·외국인 구분 없이 친밀하게 소통하는 기업문화 매력적"
인터뷰에 응한 직원들은 여러 국적의 팀원들이 함께 어우러져 협업하는 기업문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마크 씨는 "한국에 오기 전 일본의 대형 게임사에서 일했는데, 거기는 외국인 직원들만 있는 부서가 따로 있고 사무실도 별도의 층을 써서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하지만 엔씨에서는 한국인 직원들과 같은 팀에서 소통하면서 일하고 있어 동등한 회사 구성원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물론 야근도 함께 해야 한다"고 웃었다.
스위스에서 일한 적 있는 로렌 씨도 "예전 직장의 동료들은 친구가 아닌 사무적인 관계였다"며 "하지만 여기서는 퇴근하고 같이 저녁을 먹거나 술 한잔하기도 한다"고 친밀한 부서 분위기를 높게 평가했다.
엔씨소프트에 따르면 본사에서 근무하는 외국인 직원 수는 2019년 27명에서 2020년 38명, 2021년 42명, 올해 상반기 46명으로 증가했다.
미국, 대만, 일본, 베트남 지사의 직원 수도 2019년 623명에서 2020년 722명, 2021년 820명 등으로 대폭 늘었다.
이런 노력에 따라 전체 매출 중 해외 매출 비중도 2019년 21%에서 올해 상반기 기준 36%로 커지는 추세다.
엔씨소프트는 내년 출시를 앞둔 신작 TL을 비롯해 '프로젝트 E', '프로젝트 M'등 신규 지적재산(IP)을 선보이며 글로벌 시장을 공략할 예정이다.
juju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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