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식민지 알제리서 몸 낮춘 마크롱, 과거사 공동조사 합의

입력 2022-08-26 15:51
옛 식민지 알제리서 몸 낮춘 마크롱, 과거사 공동조사 합의

"식민지 이전 알제리 정체성 없었다" 지난해 발언 논란 빚기도

우크라 전쟁 이후 러시아 대체할 에너지 수입처로 알제리 부각



(카이로=연합뉴스) 김상훈 특파원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과거 식민지였던 알제리와의 미래 관계를 위해 식민통치 과거사를 정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6일(현지시간) AF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사흘 일정으로 알제리 방문에 나선 마크롱 대통령은 전날 알제리 독립전쟁 참전용사비를 참배하고 압델마드지드 테분 알제리 대통령과 회담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우리(프랑스와 알제리)에겐 고통스러운 공통의 과거가 있다. 그것이 때론 미래를 바라보는 데 방해가 됐다"며 "하지만 이제 우리는 함께 미래를 건설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쉬운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진실을 위해 공문서를 개방할 것"이라며 "우리가 과거를 선택하고 계획하지 않았고 물려받았을 뿐이지만 겸손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테분 대통령도 "우리는 이번 방문이 프랑스와의 동반 및 협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기를 희망한다"고 화답했다.

132년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는 프랑스를 상대로 한 8년간의 독립전쟁 끝에 1962년 해방됐다. 올해는 알제리 해방 60주년이 되는 해다.

독립전쟁 중 수십만 명의 민간인과 전투원이 사망했다. 프랑스 역사학자는 그 수를 50만 명으로, 알제리 당국은 150만 명으로 추산한다.



이런 양측의 역사 인식 차이만큼이나 양측은 종종 과거사를 둘러싸고 불편한 관계에 빠지곤 했다.

두 정상은 이날 회담에서 1830년에 시작된 식민통치 기간의 과거사를 조명하고 조사하는 공동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공동위원회에는 양국 역사학자들이 참여한다.

2017년 첫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마크롱은 식민지배 관련 민감한 사안에 대한 사죄를 거부해왔지만, 알제리 독립전쟁 과정에서 프랑스군의 고문과 살해 등 과거사를 일부 시인하면서 양국 관계 발전을 모색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그는 알제리를 방문해 식민 통치를 반인도주의 범죄로 규정한 적이 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그의 과거사 관련 발언은 알제리의 반발을 샀다.

당시 마크롱 대통령은 알제리 독립전쟁 참전자 후손들과 대화에서 알제리의 국가 정체성이 프랑스의 식민통치 이전에는 없었으며, 알제리 정치지도자들이 독립 역사를 프랑스에 대한 증오에 기반해 고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알제리는 문제의 발언을 내정간섭이자 독립투사들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하면서, 프랑스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였고 사헬 지대를 오가는 프랑스 군용기의 영공 통과도 불허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알제리 방문과 과거사 관련 발언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아프리카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알제리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나왔다.

러시아가 서방의 제재에 맞서 천연가스 등 연료공급을 줄이는 가운데,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알제리 등 북아프리카에서 대안을 찾고 있다.

반면, 유럽의 3대 천연가스 공급원인 알제리는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상황을 이용해 유럽의 투자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이번 방문에서는 에너지 관련 협약 체결은 이뤄지지 않겠지만, 경제 분야에서 양국의 미래 협력이 중요 이슈로 다뤄질 것이라고 AP 통신은 전했다.

meola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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