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시선] 中매체 인용에 엄격한 美언론…선전·선동의 기사가치는

입력 2022-08-28 07:07
[특파원시선] 中매체 인용에 엄격한 美언론…선전·선동의 기사가치는

(뉴욕=연합뉴스) 고일환 특파원 = 각종 옥외광고판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미국 뉴욕의 타임스스퀘어를 걷다 보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광고판 하나에 눈이 가게 된다.

타임스스퀘어의 상징과 같은 '투 타임스스퀘어 빌딩' 상단을 점유한 중국의 관영 매체 신화통신의 LED 전광판이다. 가로 12m, 세로 18m의 초대형이다.

타임스스퀘어에서 소비재를 생산하거나 판매하지 않는 업체의 광고는 신화통신 이외에는 찾기 힘들다.

세계에서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으로 꼽히는 만큼 광고비도 천문학적인 수준이기 때문이다. 타임스스퀘어 옥외광고판 하루 사용료는 최대 5만 달러(약 6천700만 원)에 달한다.

신화통신이 타임스스퀘어에 광고판을 임대한 목적은 당연히 이미지 개선을 통한 영향력 확대일 것이다.

'뉴욕 한복판에 광고를 내는 중국의 신화통신은 권위있는 대형 언론사'라는 이미지를 매년 타임스스퀘어를 찾는 5천만 명이 넘는 방문객들에게 각인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 신화통신의 법률적인 성격은 언론사가 아닌 '외국 정부기관'이다.

미국 국무부는 지난 2020년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매체를 중국 정부 기관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신화통신 등에서 글을 쓰는 직원들도 기자가 아닌 중국 정부의 기관원 취급을 받는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마이크 폼페이오는 신화통신 등에 대해 "이들 기관은 독립 뉴스 조직이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중국 공산당의 명령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선전도구라는 이야기다.

중국 관영 매체에 대한 이 같은 평가는 국무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미국 언론사들은 중국 관영매체의 보도를 단순 번역 수준으로 옮기는 경우가 드물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인 '글로벌타임스'가 좋은 예다.

글로벌타임스는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에 앞서 사설을 통해 "우리 공역에서 포착됐을 경우 중국 전투기는 경고, 추격, 요격, 전자전, 강제 착륙에 나설 수 있다"고 협박했다.

미국 하원 의장이 탄 비행기를 격추할 수도 있다는 중국 관영매체의 주장은 사실 처음부터 실현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선전·선동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러 언론사의 기사에 제목으로 등장하는 등 비중 있게 다뤄졌다.



이에 비해 정작 미국의 뉴욕타임스(NYT)는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에 앞서 이 같은 협박을 기사로 소개하지 않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뉴스통신사인 AP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공산당의 이익을 극대화하겠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관영매체의 선전·선동에 뉴스가치가 있느냐, 또한 이 같은 '아무 말 대잔치'를 미국의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올바른 언론의 역할이냐는 고민에 따른 결정일 것이다.

물론 NYT 과거 기사를 검색해 보면 글로벌타임스의 주장을 인용한 기사도 존재한다.

다만 특정 사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 없을 때 등 극히 한정된 상황에만 인용할 뿐이다.

실시간으로 다양한 기사를 생산해야 하는 뉴스통신사 AP조차도 글로벌타임스에 실린 글을 그대로 내보내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글로벌타임스는 말 그대로 글로벌 현안에 대해 중국 공산당의 입장을 선전하는 기관이다. 한국을 겨냥한 글도 적지 않다.

최근에는 미국 주도의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 '칩4' 에 한국이 가입하는 문제를 놓고 "상업적 자살행위"라고 위협을 했고,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에 대해선 한국의 주권을 부정하는 억지를 펴기도 했다.

물론 관련 업계나 정부가 이 같은 중국 내 분위기를 인지할 필요도 있다. 또한 국내 언론시장에서 원색적인 협박을 다룬 뉴스에 대한 수요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의 일개 선전기관이 쏟아내는 글에 뉴스가치가 존재하는지, 또한 중국의 억지와 협박이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전파돼 여론 형성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중국 공산당 입장에서 현재 한국 언론의 분위기는 자신들의 국익을 위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최상의 상황일 것이다.

kom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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