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푸틴, 브릭스 발판 對서방 역공 '절반의 성공'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기회 삼아 공세로 전환…개도국 진영 규합 시도
제재 반대·독자경제권 추진은 선언에 명기 못해…인도 등 균형잡기 시도한듯
(베이징=연합뉴스) 조준형 특파원 = 23일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흥 경제 5개국) 정상회의와 그 전후로 열린 부대 회의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2월24일) 이래 수세에 몰렸던 중국과 러시아의 반격 행보로 정리할 수 있다.
중·러를 사실상 '원 팀'으로 간주하는 미국과 유럽의 대(對)러시아 제재와 중국 견제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외교적 입지가 위축되는 듯했지만 두 나라가 이번 브릭스 회의를 발판 삼아 공세로 본격 전환한 듯한 모양새다.
특히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십자포화를 받았던 러시아는 '전략 파트너'인 중국의 지원 속에 다자 외교 무대에서 발언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중·러의 역공 배경은 스태그플레이션(경기 불황 속 물가 인상) 우려를 낳고 있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다.
원유 및 석유제품 금수 등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가 국제 에너지 가격을 밀어 올려 경제적 부담을 초래하면서 제재를 둘러싼 서방의 단일대오에 조금씩 균열이 가는 조짐이 보이는 가운데 세계 경제 회생을 위해 제재를 중단해야 한다는 중국과 러시아의 목소리가 점점 강도를 더하는 양상이다.
특히 세계 최대 개도국임을 자처하는 중국은 전쟁과 무관함에도 전쟁의 간접적 피해를 보고 있는 개도국들을 지지 세력으로 만들어 서방 선진국들에 맞서기 위한 발판으로 브릭스 플랫폼을 적극 활용했다.
세계 1, 2위 인구 대국인 중국과 인도가 포함된 브릭스 5개국은 세계 인구의 40%를 넘고,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4%, 무역의 16%를 각각 차지한다.
규모 측면뿐 아니라 회원국 중에서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한 나라가 없는 점, 미국 주도의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일원인 인도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크게 늘리며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효과를 희석하고 있는 상황 등은 중·러로 하여금 브릭스를 서방 진영에 맞설 최선의 플랫폼으로 여기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중국과 러시아는 서방의 대러시아 기조와는 거리를 두는 브릭스 5개국의 결속을 다지는 한편 24일 다른 신흥국과 개도국을 참여시킨 '글로벌 발전 고위급 대담회'를 마련하며 브릭스의 외연 확대를 꾀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2일 브릭스 비즈니스 포럼과 23일 정상회의(영상)를 자신들의 외교적 목적 달성에 적극 활용했다.
시 주석은 연일 제재 반대를 외치며 동맹국 규합을 통한 미국의 중·러 압박을 '패권주의 소그룹 행태'로 비난했고, 푸틴 대통령은 브릭스 회원국 간 국제결제 시스템 구축과 독자 경제권 형성 등을 주장했다.
정상회의 결과물로 나온 '베이징 선언'은 유엔과 세계무역기구(WTO)를 축으로 한 다자주의를 강조함으로써 서방의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 시도에 견제구를 던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경제, 무역, 금융, 정치·안보, 인적 교류, 공공 보건 등에서의 브릭스 국가 간 협력 강화 의지를 담고, 회원 확대 추진 방침도 명기했다.
다만 러시아 측이 제안한 브릭스 차원의 독자 경제권 추진과 대러시아 제재 반대와 같은 서방과 각을 세우는 내용은 선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인도·브라질·남아공 등 다른 브릭스 회원국들이 중·러와 서방 진영 사이에서 균형 잡기를 시도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는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의 남태평양 도서국 등 8개국 순방 때와 유사한 양상이다. 중국은 이 계기에 개별 국가들과 다양한 협력에 합의했지만 남태평양 도서국들을 대거 참여시키는 안보·경제 포괄 협정 체결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역시 일부 국가가 미·중 사이에서 급격히 중국 쪽으로 쏠리는 것을 피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브릭스 외연 확대를 예고한 중·러 진영과 이달 말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나토 정상회의를 통해 진영 결속을 다지는 미국·유럽 진영 사이에 치열한 세 대결이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 '신냉전'으로까지 부르는 양 진영의 대립과 경쟁은 심화 일로를 달릴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jhcho@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