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에 대러제재 '솜방망이'…푸틴 전쟁 자신감 꺾이긴할까
올해 에너지로 387조원 유입…"협상압박 실패·장기전 부채질"
서방, 장기효과 기대…"물가·실업률 치솟고 경제 15년 역주행"
(서울=연합뉴스) 전명훈 기자 = 석유·가스 가격 고공행진에 서방의 대러시아 경제 제재가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국제 제재에도 최근 러시아산 석유·가스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그 결과 러시아는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5개월 만에 3배로 불리며 서방의 제재를 비웃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최근 "서방의 경제적 블리츠크리그(전면 대공세)는 실패했다"고 단언하고 나설 정도다.
만약 고유가 흐름이 계속되고 러시아의 에너지 수출 실적도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올해 러시아는 에너지로 연간 총 3천억 달러(약 387조원)를 벌어들이게 된다고 WSJ은 추산했다.
이는 서방 제재로 동결된 러시아 중앙은행의 보유외환 총액과 비슷한 규모다. 제재가 거의 무력화되는 셈이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야니스 클루게 연구원은 "지금 대러시아 경제 제재는 러시아를 협상 테이블에 앉힐 유인이 되지 못한다"며 "크렘린궁은 경제 상황이 조금 나빠져도 좋은 날이 올 때까지 몇 년은 버틸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국제금융연구소(IIF)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무역 흑자를 거둬들인다는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제재 충격을 완화할) 완충 장치를 확보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결국 국제 제재의 효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서방 국가들이 고물가·에너지가 급등 등 자국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우려, 제재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는 점도 러시아에 유리한 점이라고 WSJ는 짚었다.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올해 연말까지 점진적으로 줄이도록 한 EU의 조치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결국 러시아 경제도 휘청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많다. 특히 올 하반기부터 제재가 효과를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고 WSJ는 전했다.
제재의 충격이 드러나는 경제 지표도 적지 않다. 러시아도 인플레이션으로 러시아의 가처분소득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빈곤율도 상승세다.
무급휴직·임금 삭감 등으로 버텨오던 기업이 직원을 내보내기 시작하면, 실업률이 치솟을 가능성도 있다.
또 서방에서 필수 부품을 수입하지 못한 자동차 생산 공장들은 아예 문을 닫는 경우도 나왔다. 공장 가동을 유지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는 에어백이 장착되지 않은 차량 생산을 허용해야 했다.
IIF는 올해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이 작년 대비 15%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에도 추가로 -3% 역성장이 예상된다고 IIF는 전망했다. 2년 만에 러시아 경제가 15년 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IIF는 "경제 제재로는 절대 하루아침에 러시아의 행동을 저지할 수 없다"면서도 "제재는 러시아가 그런 행동을 지속할 때 비용을 높여준다. 결국 우크라이나 침공 비용이 엄두도 내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는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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