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암만 듣던 CAR-T, 고형암 제거 이끄는 '종양 항원' 발견
라마 '나노 항체' 유래 CDH17, 동물 실험서 위장관 종양 사라져
미국 펜실베이니아 의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 캔서'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CAR-T는 현재 가장 기대를 모으는 항암 면역치료법 중 하나다.
CAR-T는 '키메라 항원 수용체'(chimeric antigen receptor)가 표면에 발현하는 T세포를 말한다.
환자 본인에게서 분리한 T세포에 새로운 유전자를 삽입, 암 종양의 특정 부위를 찾아내 파괴하도록 설계한 개인 맞춤형 T세포를 말한다.
이 치료법은 한때 종양학(oncology)의 지형을 바꿀 만큼 혁명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실제로 암 환자에게 써 보니 근본적인 한계가 드러났다.
백혈병, 림프종 같은 혈액암엔 상당한 효과가 있지만, 육종(sarcoma)이나 상피암(carcinoma) 같은 고형암엔 잘 듣지 않았다.
CAR-T의 이런 약점을 보완해 고형암도 공격하게 만드는 치료법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과학자들이 개발했다.
과학자들은 위장관 간질 종양(GICs)과 신경내분비 종양(NETs)에 모두 발현하는 특정 항원(CDH17)을 찾아냈다.
생쥐 모델에 실험한 결과, 이 종양 항원을 표적으로 삼는 CAR-T세포는 고형암 종양도 공격해 제거했다.
그런데 같은 항원이 나타나는 소장, 대장 등의 정상 세포엔 전혀 독성을 보이지 않았다.
종양에 있을 땐 CAR-T세포의 표적이 되고 정상 세포에선 CAR-T세포로부터 격리되는, 전에 보지 못했던 종양 관련 항원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시사한다.
펜실베이니아 의대의 후아 시안신 암 생물학과 교수팀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최근 저널 '네이처 캔서'(Nature Cancer)에 논문으로 실렸다.
28일 미국 과학진흥협회(AAAS) 사이트(www.eurekalert.org)에 공개된 논문 개요 등에 따르면 연구팀은 라마(아메리카낙타)에서 분리한 나노 항체를 검사하다가 CDH17 항원을 발견했다.
생쥐와 마찬가지로 인간도 이 항원은 주로 장(腸)에서 발현했다.
그런데 이 항원을 표적으로 삼게 설계한 CAR-T세포를 생쥐에 투여하면 위, 췌장, 대장 등의 종양이 제거됐다.
CDH17 항원은 암이 생기지 않은 장 상피세포에도 발현했지만, CAR-T세포는 이런 정상세포를 공격하지 못했다.
종양의 CDH17 항원을 겨냥한 CAR-T세포도 건강한 장 조직에는 결합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장 상피세포의 단단한 밀착 접합이 CAR-T세포의 공격을 피하는 '가면 효과'(masking effect)를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한다.
논문의 수석저자를 맡은 후아 교수는 "CDH17 항원이 밀착한 상피세포 사이에 숨겨져 공격을 피하는 것 같다"라면서 "정상 세포에 발현하면서 CAR-T세포의 공격은 받지 않는, 새로운 종류의 종양 항원을 찾는 길이 열렸다"라고 말했다.
위장관 간질 종양과 신경내분비 종양은 어느 것이든지 전이했을 때 치명적인 암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위장관 종양에 걸리는 사람은 매년 500만 명에 달한다.
후아 교수팀이 이번 연구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논문의 제1 저자인 펭 지이에 박사후연구원은 "CDH17 표적 CAR-T세포는 고형암 환자에게 특히 적합한 치료법일 수 있다"라면서 "지금까지 관심을 끌지 못했던 종양 관련 항원을 표적으로 하는 CAR-T 치료법 연구가 활발해질 것 같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펜실베이니아대는 지난해 '키메릭 테라퓨틱스'(Chimeric Therapeutics, Limited)라는 회사와 CDH17 표적 CAR-T 임상 연구를 위한 '전용 실시'(exclusive licensing) 계약을 체결했다.
che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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