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기부금 투입' 감염병병원 설립 지연…이달 설계 착수 난망

입력 2022-03-27 06:01
'삼성 기부금 투입' 감염병병원 설립 지연…이달 설계 착수 난망

기재부 예산 적정성 재검토 5월에야 마무리…하반기 설계 전망

국립중앙의료원 "상급종합병원 수준 모병원 함께 구축해야"



(서울=연합뉴스) 계승현 기자 =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의 유족이 세계 최고의 중앙감염병전문병원 건립에 써 달라며 5천억원을 기부한 지 1년이 다 돼 가지만 정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이하 중앙의료원)은 아직 설계 착수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27일 중앙의료원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의 중앙감염병병원 준공 사업 예산 적정성 재검토 결과는 일러야 오는 5월에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중앙감염병병원 설계에 착수하려면 예산 적정성 재검토를 거쳐야 한다.

애초 중앙의료원은 2026년 중앙감염병병원 완공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며 2022년 3월까지 설계가 완료돼야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재부의 예산 적정성 재검토 완료 시점이 5월로 밀리면서 설계 착수 시점도 덩달아 하반기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계기로 2017년 2월 중앙의료원을 국가중앙감염병병원으로 지정하고 낙후된 시설을 현대화하고 확충해 600병상 규모의 모(母)병원과 100병상 규모의 감염병 병상을 설치하는 건립 방안을 추진했다. 이어 중앙의료원은 지난해 4월 삼성가로부터 기부금 5천억원을 받으면서 고위험 중증 감염병 환자도 치료할 수 있는 고도격리 병상과 위기대응 상황실을 갖춘 150병상 규모의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을 건립하는 것으로 계획을 확대했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가 삼성의 기부금이 들어왔다는 이유로 예산을 삭감했다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으나, 정기현 전 중앙의료원 원장은 "몇천억 들어왔다고 기재부는 기부금을 자기 돈인 양 검증하겠다고 나선다"고 비판한 바 있다.

중앙의료원 관계자는 "삼성 기부금은 감염병 병상 100개를 단순히 150개로 늘리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모병원을 상급종합병원 규모로 끌어올리는 데도 투입된다"고 설명했다.

중앙의료원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국립감염병센터(NCID)는 330병상 규모 감염병 병원이며, 1천720병상 규모의 탄톡셍병원을 모병원으로 두고 있다. 12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청 역할을 해온 국립병원 탄톡셍병원의 노후한 감염병 관리센터를 대신하기 위해 싱가포르 정부가 2019년 9월 개원했다. 감염병 치료, 공중보건 훈련 및 교육, 임상 서비스, 지역 사회 참여를 한 곳에서 통합하고자 설립됐다는 점에서 한국 중앙감염병원의 '롤모델'이다.

중앙의료원은 지금처럼 감염 환자가 갑자기 늘어났을 때는 모병원의 역량이 뒷받침돼야 중앙감염병병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부인과, 정형외과, 정신과를 아우르는 모든 진료과에서 감염병 환자가 발생할 수 있고, 이를 대비하기 위해 상급종합병원 규모의 모병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앙의료원 관계자는 "150병상 규모 감염병병원을 2026년에 준공하는 당초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큼이나 모병원을 제대로 짓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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