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ICBM 마주한 바이든…제재·대화 양손에 들고 대북압박 나설듯
백악관 '새벽 성명' "필요한 모든 조처"…北 ICBM 발사 엄중 인식
고강도 제재·전략자산 전개 관측…'러·北 전선' 동시다발 대응 숙제
바이든, 한반도 긴장 고조 정치적 '악재'…외교해법 강조해 돌파구 주목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 북한이 결국 '레드라인'으로 간주돼온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쏘아 올리면서 미국과 북한을 사이에 둔 태평양의 파고가 높아지고 있다.
북한이 4년 전 스스로 선언한 ICBM 시험발사 모라토리엄(유예)을 파기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 우려는 최고조를 향하고 있다. 동시에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치열한 전략싸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바이든 정부로서는 출범 1년 2개월 만에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우선 촉구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북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처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에 이어 '북한 전선'(戰線)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힘겨운 숙제를 안게 됐다.
북한은 한국시간 24일 오후 평양 순안비행장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ICBM 1발을 시험 발사했다. 북한의 ICBM 도발은 4년 4개월 만이다.
미국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내놨다. 백악관은 미국 동부시간 이날 오전 5시 30분께, 국무부는 오전 8시 30분께 북한을 규탄하는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백악관은 북한의 ICBM 발사 4시간 만에, 그것도 새벽 시간대에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이끄는 백악관에서 그간 북한의 탄도 미사일 발사 때 성명까지 내놓는 일은 거의 없었다. 기자들의 관련 질의에 대해 답하는 수준에서 입장을 표명하는 등 신중한 태도였다.
그랬던 백악관이 새벽성명까지 내놓은 것은 그만큼 이번 북한의 ICBM 도발을 기존과는 다른 심각한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방증인 셈이다.
이는 북한의 ICBM 시험 발사가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을 비운 사이 이뤄졌다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동맹과 우크라이나 사태 해법을 논의하기 위해 유럽을 방문 중이다. 최고 통수권자가 본토를 비운만큼 신속하게 대북 메시지를 발신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악관은 공개적인 사전 경고에도 북한이 ICBM을 발사를 강행한 데 주목하고 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성명에서 북한이 지난달 27일과 이달 5일 두 차례의 ICBM 시스템 시험을 한 뒤 미국이 지난 10일 경고한 점을 재차 지적했다.
사키 대변인은 이번 시험 발사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번 발사는 다수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대한 뻔뻔한 위반"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할 것"이라고도 했다.
미국의 경고 꼭 2주 만에 북한이 예상대로 도발을 감행한 데 대해 향후 대응이 뒤따를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은 추가적인 대북제재를 내놓으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의 미사일과 관련해 두 번의 제재를 발표했다.
미국은 지난 1월 북한의 탄도미사일 무력 시위가 계속되자 대량살상무기(WMD)·탄도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에 관여한 북한 국적 6명 등을 제재 대상에 올렸다.
북한이 ICBM을 시험 발사할 수 있다는 정보를 공개한 직후인 지난 11일에는 북한의 WMD·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도운 외국인과 외국기업을 추가 제재했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전례없이 혹독한 대(對)러시아 경제 제재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 강력한 대북 제재 시스템을 가동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상당한 수준에 이른 상황에서 추가적인 경제 제재가 실효성을 띨지는 장담할 수 없다.
게다가 북한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를 명목으로 국경을 차단한 지 오래됐으며, 중국이라는 '뒷배'도 여전히 건재하다.
미국은 유엔이란 채널을 통해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를 우선 추진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인 제재로 작동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미 미국은 올해 들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관련한 규탄 성명 채택을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따라서 미국이 자체적인 고강도 대북 추가 제재안을 내놓는 동시에 대북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전개하는 등의 방법으로 군사적 경고를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미국은 지난 15일 필리핀해의 에이브러햄 링컨함에서 F-35C 스텔스기를 출격시켜 서해까지 장거리 시위 비행을 한 바 있다.
미국의 전략자산이 대거 한반도에 전개된다면 한국의 새 정부 출범과 맞물려 긴장 고조의 악순환에 늪에 빠지며 극한 대치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 경우 북한이 그간 중단했던 핵실험까지 재개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면서도 추가 상황 악화를 막아야 하는 고차 방정식을 풀어야 하는 것이다.
미국이 사실상 대러시아 대응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에 집중할 여력이 충분히 있을 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지난달 한미일 외교장관회담 직후 회견에서 미국은 두 개의 사안을 동시에 대응할 수 있다고 했지만,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실제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신(新)냉전이라고 불릴 정도로 러시아와의 패권 다툼이란 지정학적 함의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으로서는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바이든 대통령 입장에서는 자신의 정치적 명운이 걸린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한반도 긴장 고조는 악재가 될 공산이 있다.
따라서 오히려 긴장 고조를 계기로 기존의 대북 대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
과거 북미가 벼랑 끝 대치를 거듭하다 극적인 돌파구를 마련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이번에도 그에 대한 기대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키 대변인 역시 이날 성명에서 "북한이 진지한 협상을 위한 테이블로 돌아올 것을 촉구한다"며 "외교의 문은 닫히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선(先)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북한과, 대화 이전에는 어떠한 당근도 줄 수 없다는 바이든 정부의 간극을 어떻게 좁히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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