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민간지역 포격ㆍ진공폭탄 사용은 비인도적 전쟁범죄다

입력 2022-03-01 14:39
[연합시론] 민간지역 포격ㆍ진공폭탄 사용은 비인도적 전쟁범죄다



(서울=연합뉴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이 민간인 지역에 포격을 가하거나 진공폭탄을 사용하는 등 군사 공격 과정에서 제네바협약(Geneva Conventions)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옥사나 마르카로바 미국 주재 우크라이나 대사는 지난달 28일 "러시아군이 오늘 진공폭탄을 사용했는데 제네바 협약에서 실제로 금지되는 것"이라며 특히 이들 폭탄이 주거지역을 겨냥해 사용됐다고 주장했다. 산소를 빨아들여 초고온 폭발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인간의 내장에 손상을 주는 진공폭탄은 투하 지점에서 무차별적인 파괴력을 발휘하는 까닭에 비윤리적 대량살상무기이자, 핵폭탄을 제외한 가장 치명적인 무기로 간주된다.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즉각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전쟁범죄를 조사하겠다고 나선 만큼 조만간 진위가 확인될 가능성이 크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날 핵무기 운용 부대에 '특수 경계 태세' 돌입을 지시한 데 이어 러시아군이 민간인 지역을 무차별 공격하고 가공할 인명 살상 무기인 진공폭탄 등을 사용한 게 사실이라면 이는 규탄받아 마땅할 만행이다.

외신에 따르면 당초 러시아는 침공 작전이 개시되면 불과 며칠 내 수도 키예프가 함락되고 우크라이나 국민이 무력하게 굴복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의외의 결사 항전과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 직면하자 공격의 수위를 높이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다. NBC방송은 침공 닷새째인 지난달 28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제2 도시인 하리코프 민간인 거주지역을 폭격했다고 보도했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인구 140만 명의 하리코프 전역에서 폭발이 관측됐으며 아파트에서 연기가 솟아오르거나 아파트 밖에 시체가 널려있는 모습 등이 목격됐다. AP 통신도 하리코프 영상에 민간인 거주지역이 포격을 받았고, 아파트는 반복적인 강력한 폭발에 흔들렸으며, 섬광과 연기가 목격됐다고 전했다. 영국 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이 공격으로 이번 전쟁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고 분석했다. 러시아군이 진공폭탄과 함께 집속탄을 사용했다는 발표도 나왔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달 25일 러시아군의 집속탄이 우크라이나 북동부의 유치원과 민간인 대피 시설을 타격해 어린이 1명을 포함해 3명이 숨졌다고 밝히면서 이를 '전쟁범죄'로 규정했다. 살상력을 높인 집속탄은 민간인에 대한 피해 우려로 2008년 100여 개국이 사용을 금지한 무기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성명에서 "전쟁범죄와 반인도 범죄가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며 조사 배경을 밝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그 자체로 명분 없는 국제법 위반이자 자유주의 국제질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더욱이 전쟁 과정에서 비인도, 반인류적인 행위가 동원된 게 사실이라면 이는 변명의 여지 없는 폭거다. 제네바협약은 '전투의 범위 밖에 있는 자와 전투행위에 직접 참가하지 않는 자는 보호를 받아야 하고 존중돼야 하며, 인도적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분명한 조항으로 전시 민간인 보호를 명시하고 있다. 인도주의에 관한 국제법의 근간을 이루는 이 협약은 전쟁은 국가와 국가, 군인과 군인 사이에 수행되는 전략적 행위인 만큼 무기를 들지 않은 민간인의 생명은 절대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정신과 닿아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번 침공이 예상 밖의 고전을 면치 못하자 핵 위협 카드를 꺼낸 데 이어 민간인 지역 포격과 진공폭탄ㆍ집속탄 등 가해 범위가 넓어 민간인 피해 가능성이 큰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유혹을 받고 있거나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행위는 전쟁이 종결된 뒤에라도 반드시 그 책임이 철저히 추궁돼야 할 전쟁범죄임이 분명하다. 외신 보도는 푸틴 대통령이 키예프를 향한 더딘 진격에 실망해 추후 우크라이나 저항을 초토화할 더욱 파괴적인 전술을 사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옮겨져서는 안 될 것이다. 러시아는 무고한 인명의 희생을 초래하는 비이성적 군사 행위를 즉각 중단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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