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침공] 러시아 제재·규탄 싱가포르…아세안과는 다르다
"싱가포르 은행, 러 원자재 무역금융 제한"…총리는 "강력 규탄"
아세안 '미온적 성명'…싱가포르 "'힘이 정의'면 우리같은 소국들 위험"
(방콕=연합뉴스) 김남권 특파원 = 싱가포르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와 관련, 다른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회원국들과는 차별화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아세안이 러시아 비난에 미온적인 분위기인 것과는 달리, 싱가포르는 독자적 제재 방침을 밝히는가 하면 총리가 직접 나서 강력히 규탄한다는 입장까지 표명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싱가포르 대형은행들이 러시아산 원자재 수입과 관련한 무역금융 제한에 나섰다고 지난달 28일 보도했다.
제한 조치에는 러시아산 원유 및 천연액화가스(LNG)를 포함한 거래에 대한 신용장 발급 중단도 포함됐다고 통신이 현 상황을 잘 아는 관계자들을 인용해 전했다.
통신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가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불확실한 만큼 대형 은행들이 러시아 에너지 거래를 포함해 신용장 발급을 중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조치는 비비안 발라크뤼시난 외교장관이 같은 날 싱가포르가 러시아와 관련된 은행들과 금융 거래를 막을 것이라고 밝힌 것에 때맞춰 나왔다.
비비안 장관은 의회에 출석, "싱가포르는 러시아를 대상으로 한 적절한 제재와 제한을 가하기 위해 생각이 비슷한 다른 국가들과 협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체적인 조치들을 현재 마련 중이며, 곧 발표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리셴룽 총리도 러시아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리 총리는 전날 오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싱가포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강력히 규탄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자주권과 독립, 그리고 영토 보전이 존중돼야 한다고 단언한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우리에게 중요하다"며 "국제 관계가 '힘이 정의다'라는 개념에 기초한다면 세계는 싱가포르와 같은 소국들에는 위험한 곳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이것이 싱가포르가 자주 국가에 대한 공격 행위를 금지하는 국제법과 유엔 헌장을 확고하게 옹호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러시아가 군사력이 절대 열세인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하는 상황이 용인된다면, 인구 545만명 가량에 서울보다 조금 큰 국토 면적인 '소국' 싱가포르의 운명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위기 의식이다.
싱가포르의 전 외교차관 빌라하리 카우시칸은 "이번 방침은 거의 전례가 없는 조치"라며 "내가 아는 한 싱가포르가 독자적 제재를 가한 것은 1978년 베트남의 캄보디아 침공 이후 밖에 없다"고 말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이런 강경 기류는 아세안과는 명확히 차별화된다.
쿠데타로 군부가 1년 넘게 집권 중인 미얀마를 포함한 10개국 아세안 외교장관들은 지난 주말 공동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모든 당사자가 최대한 자제하고 대화 노력을 하기를 촉구한다"며 "상황이 제어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막기 위한 평화적 대화를 위한 여지가 아직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외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미온적인 성명이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자유아시아방송은 전했다.
방송은 아세안 성명이 러시아를 콕 집어 비판하지 않았고, 침공(invasion)이라는 단어도 없었으며, 압도적 군사력을 가진 대국의 침공으로부터 한 국가가 자신을 방어하는 상황임에도 '모든 당사자'에게 자제를 촉구한다는 표현을 썼다고 지적했다.
아세안에는 러시아가 군부 쿠데타를 지지하고 주요 무기까지 공급하는 미얀마와, 구 소련 시절부터 유대 관계를 다져온 베트남 등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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