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푸틴의 '핵 위협' 맞불은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입력 2022-02-28 13:10
[연합시론] 푸틴의 '핵 위협' 맞불은 위험하고 무책임하다



(서울=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닷새째인 28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 위협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푸틴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핵 억지력 부대의 특별 전투 임무 돌입'을 국방장관과 총참모장에게 지시했다고 공개했다. '핵 억지력 부대'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용하는 러시아 전략로켓군 등 핵무기를 관장한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푸틴의 핵 위협에 강하게 반발했다. 젠 사키 미 백악관 대변인은 ABC 방송에 출연해 "정당한 이유 없는 긴장 고조와 위협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미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오판하면 상황을 더욱 위험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푸틴의 핵무기 운용부대 태세 강화 지시에 대해 "위험한 언사이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이 핵을 거론하고 나선 것은 우크라이나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서 서방 국가들의 강도 높은 경제적 제재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전격 침공한 이후 동남북 3면에서 진격을 계속하고 있지만 수도 키예프 등 대도시 진입을 못 하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대응 조치로 러시아 은행들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취했다. 스위프트는 1만1천 개가 넘는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안전하게 결제 주문을 주고받는 전산망이다. 이를 이용하지 못하면 수출 대금 등을 주고받지 못한다.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 수단 중 하나여서 '금융 핵 옵션'으로 불린다. 러시아 루블화는 이로 인해 미국 달러 대비 30% 폭락했다. 서방 국가들은 또한 푸틴 대통령을 직접 제재 대상에 올리고 그의 미국과 유럽연합(EU) 내 자산을 동결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직접적인 파병은 하지 않으면서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경제적 지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리전에 나서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핵을 언급한 TV 연설에서 "서방 국가들이 경제 분야에서 러시아에 대해 비우호적인 행동을 할 뿐 아니라 나토 회원국의 고위 관리들까지 러시아에 공격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또한 28일 열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회담에 앞서 우크라이나 및 서방 국가들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핵을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8일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국경 지대에서 첫 회담을 연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대표단이 만날 준비가 된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의 핵 억지력 강화 명령이 나왔다"면서 "이는 우크라이나 대표단을 더 압박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을 거론하면서 긴장을 최대한 고조시켜 우크라이나 및 서방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실리를 취하려는 푸틴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회담을 유리하게 끌어가려는 계산된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푸틴의 핵 거론은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위험하다. 언제든지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음을 시사하는 듯한 행태는 세계를 향한 도발이자 위협이다. 국제사회에서 고립을 자초하는 길이다. 인류를 파멸시킬 정도의 파괴력과 위험성 때문에 세계 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핵무기 감축을 추진해왔다. 한때 각각 5만 개 이상의 핵탄두를 보유했던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각각 6천 개 안팎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30% 안팎을 실전배치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제 사회가 지속적인 감축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미국과 러시아가 실전 배치한 핵탄두만으로도 인류에 큰 위협이 되기에 충분하다. 핵탄두를 탑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의 기술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ICBM, SLBM을 탐지하고 격추하기 위한 시스템 개발이 추진되고 있지만 SLBM 등의 은밀성으로 인해 한계가 분명하다. 한때 세계 3위 핵무기 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가 경제지원의 대가로 핵무기를 포기한 뒤 러시아의 침공을 받게 된 상황과 푸틴 대통령의 핵 위협 등이 자칫 이란, 북한 등의 핵무기 개발을 더욱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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