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 잇따라 실시간급 러시아 위협 정보 공개하는 이유는
"동맹들과 공동 견해 구축하고 러시아에 명백한 경고 전달"
"조금이라도 틀리면 신뢰 떨어져"…"정보원 위험"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미국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해 러시아 관련 기밀 정보를 줄줄이 '실시간급'으로 공개하는 이례적인 행보를 보인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국경지역 군사력 증강과 그 의도에 대한 정보와 분석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외부 전문가, 의회와 상의를 거쳐 자료를 배포하고 언론이 이를 보도하는 식이다.
이에 근거해 미 언론은 작년 가을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위해 17만5천명의 병력을 배치할 수 있다는 의혹부터 크렘린궁이 전쟁 구실로 삼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가짜 공격 선전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등 다수의 보도를 내보냈다.
최근에는 러시아가 16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것이라는 아주 구체적인 첩보도 공개됐다.
러시아의 병력 증강 현황부터 예상 공습 시나리오까지 다양한 정보가 언론을 타고 전해졌고,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13일(현지시간)에도 러시아가 지금 당장이라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를 두고 미국 정부가 이례적으로 거의 실시간급 러시아 관련 정보를 쏟아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대해 미 정부는 러시아의 거짓말을 선제적으로 폭로해 미국과 동맹국들이 같은 이해관계를 구축하고 행동하도록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거론한다.
미 정보당국 고위 관계자는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지금까지 비용 편익 분석에선 가능한 한 많이 공유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렸다"며 "러시아의 동기에 대한 유럽의 회의적인 태도를 고려할 때 위협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확립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공개한 것은 기밀 해제된 소량의 정보들로, 출처와 방법에 대한 잠재적인 손상 여부를 매우 신중하게 검토했다"라고 전했다.
마크 워너 상원 정보위원장도 정보 공개가 러시아에 명백한 '경고'를 줬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는 "러시아인들을 약간 뒤로 물러서게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도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허위 정보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정보'"라고 밝힌 바 있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 마이클 헤이든도 바이든 정부의 의견을 지지했다.
그는 변화하는 위협 상황을 고려할 때 정보기관이 더욱 공개적인 성향을 보여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잦은 정보 공개의 위험성을 우려하며 자제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러시아 전문가인 전 CIA 간부는 "만약 정보가 부분적으로라도 잘못됐다는 게 드러나면 파트너들과 대중에게 신뢰도가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러시아를 담당했던 전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정부가 더 많은 정보를 공개할수록 크렘린궁이 그 출처와 방법을 추적할 가능성이 커져 결국 인적자산 등 미국의 정보원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러시아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대체 몇 번을 보여줘야 하는가"라며 "러시아는 우리가 수집한 채널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그럼 우리는 다음번에는 그 계획이 뭔지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정부가 과거 우크라이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보여준 전략·정보 실패 때문에 지나치게 공개 행보를 보이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는 지금보다 더 은밀한 방법을 사용해 미국을 교란했다.
당시 푸틴은 크림반도를 점령하기 위해 휘장이 없는 군대를 배치했다. 이들은 녹색 군복을 입은 것 외에는 정체를 알 수 없어 일명 '리틀 그린 맨'으로 불리기도 했다.
바이든 정부는 또 아프가니스탄 철수 과정에서 당시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얼마나 빨리 함락될지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의 한 고위 보좌관은 "아프간 철군 경험이 바이든 행정부를 매파들의 비판에 더 민감하게 만들어 나쁜 매파의 조언에 더 영향을 받게 만든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고 지적했다.
미 정부 관계자들은 이러한 우려를 의식하고 있으며 정보 공개의 위험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공개 정보 범위는 수집된 정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미국이 적국의 정보를 공개한 전례는 2003년에도 있었다. 당시 부시 W.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는 의혹을 흘렸지만, 이후 허위로 드러났다.
nomad@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