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빠지는 중동에서 존재감 키우는 프랑스

입력 2021-12-06 02:42
미국 빠지는 중동에서 존재감 키우는 프랑스

마크롱,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후 서방국 정상으로 처음 사우디 방문

UAE에서는 대규모 무기 판매 계약 체결



(테헤란=연합뉴스) 이승민 특파원 =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에서 미국이 발을 빼려는 가운데 프랑스가 걸프 국가 사이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자말 카슈끄지 살해 사건 이후 서방 국가 정상으로서는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홍해 연안 도시 제다에서 사우디의 실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를 만나 약 4시간 동안 회담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카슈끄지 사건 이후 서방으로부터 외면받아온 무함마드 왕세자가 마크롱 대통령을 만난 것은 의미 있는 이정표라고 논평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무함마드 왕세자와 회담 직후 취재진에게 "우리는 금기 사항 없이 모든 주제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카슈끄지 암살을 지시한 의혹을 받는 무함마드 왕세자 대신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소통해 왔다.



프랑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걸프, 이라크, 예멘 등 중동 지역 긴장을 완화하고 테러와 싸우려면 무함마드 왕세자와 대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대통령실은 마크롱 대통령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세계 에너지 시장, 이란 핵 프로그램, 경제적 동반자 관계, 레바논-걸프국 갈등 등 현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이번 회담 직후 수소차 분야 협력을 포함해 5개 협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외신들은 이번 방문에서 마크롱 대통령이 사우디와 레바논의 관계 회복을 중재했다고도 전했다.

사우디 등 걸프 국가들은 레바논과 사실상 단교 상태다. 지난 10월 레바논 정보부 장관이 예멘 내전에 개입한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우디는 자국 주재 레바논 대사를 추방하고 레바논 주재 자국 대사도 불러들였다. 그리고 레바논으로부터 물품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에 앞서 카타르, 아랍에미리트(UAE)를 잇달아 순방했다.

UAE는 마크롱 대통령 방문 직후 프랑스와 라팔 전투기 80대와 수송용 헬리콥터 카라칼 12대 등 구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지난 8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열린 '중동 지역 정상·외무장관 회담'을 이라크와 공동 주최하기도 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당시 회담에 참석해 "IS는 여전한 위협으로 남아있기 때문에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면서 프랑스는 미국이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라크에 계속 병력을 주둔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 아래 중동에서 '철수'를 진행 중이다.

미국은 지난 9월 사우디에 설치한 첨단 미사일 요격 체계를 철수했다. 미군은 올해 안에 이라크에서도 전투 임무를 종료할 예정이다.

WSJ은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철수를 지켜본 걸프 국가들이 안보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 국가와의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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