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내년 사업계획 수립 골머리…"비용·공급망 관리가 화두"
부품 차질 지속·원자잿값 급등·위드 코로나로 불확실성 커져
"유동성 확보하고, 수익성 높여라"
(서울=연합뉴스) 산업팀 = "거센 변화의 물살에 휩쓸려 갈지, 아니면 살아남을지를 가르는 '생존의 강'을 건너는 시기가 될 겁니다."
내년 경영환경을 놓고 모 대기업 임원이 한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과 중국 간의 무역갈등 심화 속에 글로벌 공급망 붕괴 우려가 고조되고 있고, 반도체 등 부품 수급 차질도 지속되는 등 대외 불확실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유가 및 원자잿값 급등, 환율 변동성, 인플레이션 우려가 상존하는 데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이 가져올 변화 역시 가늠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다 기업들은 정부의 탄소중립 가속화 흐름에 맞춰 사업 재편도 서둘러야 하고, 또 경영환경 전반에 영향을 미칠 내년 3월 대선 결과에도 촉각을 세워야 하는 입장이다.
그야말로 사방이 안갯속, 시계 제로다. 내년도 사업계획 짜기가 좀체 해법을 찾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 되고 있는 것이다.
◇ 반도체·전자업계…"경영 효율성 높이고 공급망 관리 총력"
7일 산업계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005380], SK, LG 등 주요 기업들은 내년 사업 계획을 수립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내년 기업들의 성적표는 비용 관리와 공급망 관리에 달려있다"면서 "공급망 관리를 정비하고 글로벌 거점별 생산계획을 정교하게 세우는 데 기업마다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삼성은 최근 조직별로 내년 업무계획과 예산안 취합을 마쳤다.
부품 공급난 등 대외 불확실성이 큰데다 미국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장 투자 계획이 확정되지 않아 전체 예산안을 마무리 짓지는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005930]는 앞서 올해 5월 170억달러(약 20조원) 규모의 미국 파운드리 공장 증설 투자 계획을 발표했으며, 현재 공장 부지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와 오스틴 등을 후보지로 놓고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3분기 실적 발표 때도 "다양한 거시 불확실성이 상존한다"는 이유로 올해 연간 시설 투자 전망치와 내년 메모리반도체 시황 전망을 하지 않았다.
SK하이닉스[000660]는 예년보다 빨리 내년 경영계획 수립에 들어갔다.
노종원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얼마 전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최근 장비 리드타임(주문 후 납품까지 시간)이 굉장히 길어지고 있다"면서 "경영계획을 예년보다 두 달 이상 앞당겨 내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LG그룹은 지난달 26일부터 LG전자[066570]를 필두로 주요 계열사들이 내년 사업계획 초안을 보고하는 사업보고회를 진행 중이다. 계열사들은 경영 효율화, 공급망 관리 등에 초점을 맞춰 사업계획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원자잿값과 물류비가 큰 폭으로 올라 내년 기업들의 수익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전망"이라며 "매출원가와 판매관리비가 올해보다 상승할 것으로 보여 경영 효율성을 높이는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 자동차업계, 목표치 하향 불가피…"유동성 확보하라"
현대차는 반도체 공급 차질로 올해 판매 전망을 기존 416만대에서 400만대로 낮췄다. 투자계획 규모도 대외변동성 확대에 따른 유동성 확보를 위해 기존 8조9천억원에서 8조원으로 줄였다.
이런 경영 기조는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완성차업계는 글로벌 자동차 판매가 2023년 이후에나 본격적으로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수급난이 내년 초까지 이어지고, 마그네슘이나 알루미늄 등 자동차 생산 필수 원자재가 중국발(發) 공급망 쇼크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정만기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반도체 부족 해소에 2년가량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기차와 자율주행차가 늘어나며 수요는 더 많아지고 있다"며 "원자재 수급 불안까지 지속되면 자동차 부품업계는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도체와 원자재 수급 문제는 자동차 업계 스스로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외생변수인 만큼 전반적으로 내년도 사업 목표치를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 철강·조선 ·정유업계 "수익성 확보에 총력"
올해 업황 개선으로 호실적을 거둔 철강과 조선업계 등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내년에도 업황은 비교적 좋을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산업의 경우 자동차 등 전방 산업의 수요가 견조한데다 철강 최대 생산국인 중국 정부가 대기오염과 전력수요 관리 차원에서 감산 기조를 유지하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포스코[005490]도 지난 3분기 실적발표 때 "에너지 공급난, 헝다 사태 등의 변수가 있으나 영향이 소폭에 그치며 수요는 여전히 긍정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코는 이런 전망을 반영해 현재 내년도 사업계획을 수립 중이다.
조선업계는 발주가 늘고 신조선가(새로 만드는 선박 가격)도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이미 2.5년 치 이상의 수주잔고를 확보한 만큼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의 선별 수주로 수익성을 극대화해나갈 계획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실적 부진을 겪었던 정유사들은 세계 경제 회복세에 따른 본격적인 수요 회복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정유 사업은 유가와 원자재 가격 등의 변수에 따라 업황 고저가 큰 만큼 정유 사업 외에 수소 등 친환경 신사업 투자를 확대해 체질 개선을 꾀한다는 방침이다.
◇ 항공업계 "유럽·미주 노선 등 운항 재개 검토"
항공업계는 여객사업이 내년에도 코로나19로 인한 탑승객 감소에다 고유가, 금리 인상 등으로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글로벌 항공 여객 수가 내년에도 2019년 대비 88%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대한항공[003490]은 이러한 대외 환경에도 백신 접종률 상승과 '위드 코로나'에 따라 수요 회복이 예상되는 노선 위주로 운항 재개를 검토할 계획이다.
대한항공의 현재 국제선 여객 노선 운항률은 2019년 대비 약 36% 수준이다. 내년에는 휴양지와 백신 접종률이 높은 유럽·미주 노선 등의 운항이 우선 재개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대한항공은 유휴 자산 매각 등으로 재무 건전성을 확보해 '포스트 코로나'에 대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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