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상장기업 분기실적 공개 의무화 폐지 논의 다시 수면 위로

입력 2021-10-10 11:03
일본, 상장기업 분기실적 공개 의무화 폐지 논의 다시 수면 위로

기시다, 첫 국회연설서 '장기적 관점 경영' 내세워 폐지 필요성 언급…찬반 논란 일 듯

(도쿄=연합뉴스) 박세진 특파원 = 일본에서 상장기업에 의무화된 분기별 실적 공개 제도를 없애는 방향으로 논의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지난 8일 국회에서 행한 첫 소신표명 연설에서 3개월 단위로 기업 실적을 발표토록 하는 '분기 공시' 제도를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는 실적 발표 대상 기간을 더 길게 해 단기적인 실적 올리기에 급급해하는 기업 문화를 바꾸어 보겠다는 취지이지만 투자자들에게 필요한 정보 공개의 제약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찬반 논란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기시다 총리는 기업이 장기적 관점에서 주주뿐만 아니라 직원과 거래처와도 실적의 과실을 나누는 삼자(三者) 공익(共益)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분기별 실적 공시 제도 개정 등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의 새로운 자본주의를 주창하면서 격차 시정을 위한 '분배' 중시 정책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시다 내각은 앞으로 금융청 산하의 금융심의회에서 관련 논의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일본에서 분기별 실적 공개는 1999년부터 도쿄증권거래소 규칙으로 상장기업에 순차적으로 의무화됐다.

2006년 라이브도어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분기 실적을 허위로 기재해도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제도상 허점이 문제로 부각되면서 2008년부터는 금융상품거래법으로 의무화됐다.

이에 따라 상장기업은 거래소용 분기별 실적 보고서와 재무국에 제출하는 분기 보고서 등 두 종류의 서류를 3개월 단위로 만들어야 한다.



이를 두고 기업 쪽에서는 부담이 크다며 완화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본 기업단체인 간사이(關西)경제연합회는 경영인과 투자자들이 단기적 이익을 지향하도록 조장할 수 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분기 실적 공개 제도의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한 글로벌 기업 간부는 아사히신문에 "관련 서류 작성에 많은 품이 든다"며 분기 실적 공시 제도를 폐지해서 생기는 여력을 기후변화 대응 등 다른 정보 공개를 충실히 하는 쪽으로 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이 2013년 분기 실적 공개 제도를 없앤 데 이어 영국, 프랑스가 각각 2014년과 2015년 그 뒤를 이었다.

1970년대부터 상장기업의 분기 공시를 의무화한 미국에서도 폐지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권에서 관련 논의가 진행됐다.

일본에선 금융심의회 차원에서 2018년 분기 실적 관련 서류 두 종의 통일화와 공개를 임의화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중장기 관점의 투자자 입장에서도 사업 진행 상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신중론이 나오면서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다.



싱크탱크인 다이와(大和)종합연구소의 스즈키 유타카(鈴木裕) 수석연구원은 분기 실적 공시 제도를 폐지할 경우 관련 정보를 이용해온 투자자들의 투자 판단이 어려워지고 일본 기업이 내부 정보 공개에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주어 투자금 이탈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런 배경에서 분기별 공시 의무화 제도가 폐지된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각국의 주식 지표를 구성하는 주요 기업의 대다수는 임의 공개를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아사히신문은 대형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인용해 "단기적으로 이익을 내지 못하면 장기적인 이익도 낼 수 없다"며 일본 정부가 분기 공시 제도를 폐지할 경우 기업 정보 공개에 부정적이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parks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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