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 이어 호주 핵잠수함까지…미국 향해 이 가는 프랑스

입력 2021-09-17 20:10
수정 2021-09-17 20:28
아프간 사태 이어 호주 핵잠수함까지…미국 향해 이 가는 프랑스

대선 앞둔 마크롱 타격 불가피…야당 "모욕적", "재앙" 맹비난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프랑스가 미국, 영국, 호주의 3자 안보 동맹 결성으로 막대한 영향을 받게 됐음에도 사전에 관련 논의에서 배제됐다는 굴욕감에 분을 삭이지 못하고 있다.

프랑스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기자회견으로 '오커스'(AUKUS) 발족을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서야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는 오커스 발족을 계기로 미국, 영국 지원을 받아 핵 추진 잠수함을 개발하기로 했고, 이에 따라 프랑스 방산업체 나발 그룹과 2016년 맺은 77조원 규모의 디젤 잠수함 공급 계약을 파기한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미국, 영국, 호주가 비밀리에 협상을 진행하면서 프랑스에 이를 고의로 알리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일간 르파리지앵이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외교부 장관과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0일 파리에서 호주 측 관계자들을 만났을 때 일언반구도 없었다는 점은 이러한 해석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프랑스는 정부 지분이 들어간 나발 그룹과의 계약을 파기한 호주뿐만 아니라 계약 파기에 불을 지핀 미국을 향해 더욱 분노하는 분위기다.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지난달 아프가니스탄을 완전히 장악하고 나서 미국이 프랑스 등 동맹국에 보여준 태도에 실망한 게 불과 한 달 전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 8월 31일로 정해놓은 아프간 주재 미군 철수 시한을 뒤로 미뤄 자국민이 대피할 시간을 벌어달라는 프랑스 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

사사건건 갈등을 빚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떠나면 미국과 장밋빛 미래를 그릴 수 있으리라 예상했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당황스러울 상황들이다.

프랑스 대통령실인 엘리제궁 내부에서는 "아주 심각한 외교적 위기를 겪고 있다", "더는 미국이라는 동맹국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는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라고 한다.

내년 4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정치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마크롱 대통령을 향해 맹폭을 퍼부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아직 재선 도전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지만 차기 대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론조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꼽히는 극우 성향의 마른 르펜 국민연합(RN) 대표는 이번 사태를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재앙"이라고 부르며 조사를 촉구했다.

과거 우파 공화당(LR)에 몸담았다가 탈당한 발레리 페크레스 일드프랑스 주지사는 "모욕적인 일"이 벌어졌다고 비난했다.

극좌로 분류되는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 프랑스(LFI) 대표는 프랑스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를 주장했다.

runr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