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코끼리·매머드 멸종 "인류 조상의 무차별 사냥 탓 아냐"

입력 2021-07-02 16:54
고대 코끼리·매머드 멸종 "인류 조상의 무차별 사냥 탓 아냐"

변화하는 기후 적응 못해 수백만년간 쇠퇴 겪다 멸종…장비목 6천만년 진화 연구 결과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고대 코끼리와 매머드, 마스토돈 등은 마지막 빙하기 말기에 인류 조상의 무차별적 사냥으로 멸종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코끼리의 조상인 이런 장비목(長鼻目) 대형 초식동물이 인간의 사냥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했다는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왔다.

장비목 동물이 수백만 년 걸쳐 기후 변화가 가져온 점진적 쇠퇴를 겪어왔으며 마지막 빙하기 말기의 매머드와 마스토돈 멸종은 이런 과정의 종지부였다는 것이다.

영국 브리스틀대학에 따르면 스페인 알칼라대학의 고생물학자 후안 칸탈라피에드라 박사가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북아프리카에서 시작해 6천만 년간 이어져온 코끼리류 185종의 진화와 멸종을 분석해 얻은 이런 결과를 과학 저널 '네이처 생태와 진화'(Nature Ecology and Evolution)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런던 자연사박물관부터 모스크바 고생물연구소에 이르기까지 장비목 동물의 화석을 소장한 박물관을 샅샅이 뒤져 몸집의 크기와 두개골 형태, 이빨의 씹는면 등을 조사했으며, 이를 통해 진화과정을 분석했다.

논문 공동저자인 브리스톨대학 지구과학과의 장한원 박사는 "처음 3천만 년 간은 두 개 그룹만 진화했다"면서 "이 기간에는 대부분의 장비목 동물이 작은 개에서 야생돼지 크기로 별다른 특징을 갖지 못했으며 지금의 코끼리와 닮은 점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약 2천만 년 전 아프로-아라비아 지각판이 유라시아 대륙과 충돌하면서 장비목 동물들은 극적인 진화 과정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라시아는 물론 북미의 새로운 서식지로 다양한 마스토돈 급 장비목 동물이 퍼져나가면서 각자의 환경에 맞춰 빠른 진화를 했다는 것이다.

칸탈라피에드라 박사는 "고대 북아프리카 종들은 느리게 진화하며 종분화가 적게 이뤄졌지만, 아프리카에서 벗어난 뒤에는 25배나 빠르게 진화하며, 같은 서식지에서 사는 장비목의 여러 종 사이에서 틈새를 차지하는 종이 새로 등장하는 무수히 많은 종분화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삽 모양의 평평한 아랫니를 가진 '쇼벌 터스커'(shovel-tuskers)를 그런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장 박사는 "장비목 동물 진화에서 부흥기와도 같았던 이 시기에 게임의 목표는 '적응 아니면 죽음'이었다"면서 "계속 바뀌는 기후로 인한 서식지 변화는 무자비해 새로운 적응책을 계속 만들어내야 했으며, 이를 따라잡지 못하는 종은 죽음을 맞으면서 한때 다양하게 종분화하며 널리 퍼졌던 마스토돈은 아메리카 대륙에 몇 종만 남게됐다"고 했다.

약 300만년 전에는 아프리카와 동아시아의 코끼리와 스테고돈이 끊임없는 진화 경쟁에서 승리한 듯 보였으나 빙하기 도래로 타격을 받으면서 살아남은 종은 더 혹독한 서식 환경에 적응해야 했다.

연구팀은 그 대표적인 예로 매머드를 꼽으면서, 추위에 견디기 위해 두껍고 텁수룩한 털을 갖고 눈을 헤치고 먹이를 찾기 위해 더 큰 상아를 갖게 됐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장비목 동물이 맞은 마지막 멸종의 절정이 아프리카에서는 240만 년 전, 유라시아와 미주에서는 각각 16만 년 전과 7만5천 년 전인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는 정확한 멸종 시점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각 대륙의 장비목 동물들이 더 큰 멸종위험에 당면하게 된 때를 나타내는 것"이라면서 예상과 달리 인류 조상의 확산과 대형 초식동물 사냥 능력 확대 등과는 상관관계를 갖지 않는다고 했다.

장 박사는 "이런 결과가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이런 자료는 약 150만 년 전 대형 초식동물 사냥이 인류 조상의 중요한 호구 전략이 되면서 고대 코끼리 멸종에 인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장비목 동물의 멸종위험이 이미 절정에 달한 뒤 현생 인류가 관련 지역에 정착했지만, 인류처럼 영리하고 적응력이 뛰어나고 사회성을 가진 포식자는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완벽한 '블랙스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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