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격의 눈물 흘린 멕시코 노병들…한국전 참전용사회 첫발

입력 2021-04-25 07:42
감격의 눈물 흘린 멕시코 노병들…한국전 참전용사회 첫발

미군 소속으로 6·25 참전한 멕시코군 모임 처음 결성돼

현재 생존 4명·작고 5명 확인…"숨은 참전용사 계속 찾을 것"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멕시코 노병 로베르토 시에라 바르보사(90)는 "대한민국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목도리를 걸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그는 24일(현지시간) 멕시코시티의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에서 열린 한국전 멕시코 참전용사회 출범식 내내 울먹이며 여러 차례 "자랑스럽고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6·25 발발 71년 만에 멕시코에서도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첫발을 내디뎠다. 시에라를 포함해 미군 소속으로 한반도에서 싸웠던 생존 참전용사 4명과 가족, 작고한 참전용사 5명의 유가족 등으로 이뤄졌다.

호세 비야레알 비야레알(90),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알마다(90)까지 생존 참전용사 3명이 직접 참석했고, 거동이 불편한 헤수스 칸투 살리나스(86)와 멕시코 전역의 참전용사 유족들은 이날 화상으로 출범식에 함께 했다.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 아흔 살의 세 노병은 모두 스무 살 전후에 먼 한반도에 파병돼 유엔 깃발 아래 우리나라를 위해 싸웠다.

이후 70년간 '잊힌 전쟁'의 '잊힌 용사들'로 지내던 이들은 처음으로 한국전 참전용사회가 결성돼 자신들의 활약이 되새겨지는 데 대해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멕시코에 있는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존재는 그동안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6·25 당시 멕시코는 우리나라에 식량과 의료용품을 지원했으나 참전 16개국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난해 한국전 발발 70주년을 계기로 미군 소속으로 한반도에서 싸운 멕시코 군인들의 존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브루노 피게로아 주한 멕시코 대사는 지난해 세미나를 통해 180만 명의 미군 참전용사 중 10%인 18만 명이 히스패닉이었으며, 이중 10만 명 이상이 멕시코 참전용사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중남미 유일 참전국인 콜롬비아 참전 병력 5천여 명보다 훨씬 큰 규모다.



이중엔 미국에 거주한 멕시코계 미국인도 있지만 1943∼1952년 미국·멕시코간 병역협력협정에 따라 멕시코 국적을 유지한 채 미군에 입대한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멕시코 참전용사의 존재가 알려진 후 주멕시코 한국대사관은 더 늦기 전에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현지에서 '숨은 영웅' 찾기에 나섰고 멕시코 곳곳 참전용사들을 속속 확인해 이날 참전용사회 결성으로 이어지게 했다.

앞으로 참전용사회를 중심으로 더 많은 멕시코 참전용사들을 찾아낸다는 계획이다.

참전용사회 초대 회장인 비야레알은 "참전용사회는 70년 전 우리 형제와 친구들이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것을 알리고 평화를 위한 투쟁과 희생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탄생했다"며 "참전용사들의 권리를 수호하고 멕시코와 한국간 협력과 우호를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령의 비야레알은 최근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에도 출범식에 직접 참석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가족들의 도움을 받아 감격을 순간을 함께 했다.

한국전 당시 통신병으로 전투에 참여했던 시에라는 이 자리에서 70년 전 함께 했던 전우들의 이름을 부르기도 했다.



페르난데스는 "한국은 폐허에서 시작한 강한 나라로 변모한 국가"라며 자신이 젊은 시절 싸웠던 한국이 자신들을 기억해주는 것에 기쁨을 표시했다.

멕시코 방문 중에 출범식에 참석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은 생존 참전용사들의 이력을 한 명 한 명 소개하면서 "여러분들 덕분에 한국이 10위 경제 대국이 됐다"고 감사를 전했다.

최 차관은 "멕시코는 이제 한국에 형제의 나라"라며 "한국 정부는 더 많은 참전용사를 찾고 의미 있는 활동을 통해 이들의 헌신과 희생을 기려 후손들에게 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루이스 크레센시오 산도발 멕시코 국방장관도 직접 참석해 참전용사들을 격려하고 출범식을 축하했다.

산도발 장관은 "오늘의 한국을 건설하는 데 기여한 참전용사의 희생과 노력을 한국 국민이 인정하고 감사를 표한다는 점, 한국 정부가 강한 의지로 참전용사회를 결성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멕시코군을 대표해 우리 정부와 국민에 우애의 인사를 전했다.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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