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르는 '공룡' LH…토공-주공 분리안에 해체론까지

입력 2021-03-14 07:51
수술대 오르는 '공룡' LH…토공-주공 분리안에 해체론까지

정부 "모든 가능성 검토"

(서울·세종=연합뉴스) 윤종석 홍국기 기자 = 3기 신도시 땅 투기 사태로 해체에 가까운 조직쇄신 요구를 받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개편 방안이 이번주 본격화된다.

아직 정부 내에서 구체적인 안건이 마련된 것은 아니지만 일부 기능의 분리부터 과거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의 환원, 해체까지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어떤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든 지금의 비대해진 공룡조직은 그냥 둘 수 없다는 공감대는 확실한 만큼 대대적인 조직 개편은 불가피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14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국무조정실 등 정부부처는 이번 주부터 LH 사태 재발방지 대책 논의에 착수하면서 LH 조직개편 방안에 대한 검토에 들어간다. 앞서 정세균 총리는 해체수준으로 환골탈태하게 하는 혁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은 LH 조직개편 방안에 대한 부처 내 본격적인 협의는 이뤄지지 않았고 각자 아이디어만 있는 상황"이라며 "관계 부처 협의와 외부 전문가 등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조직 개편 방안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LH 조직이 너무 비대해지다 보니 내부 통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어처구니없는 땅 투기 사태가 터져 나왔다는 목소리가 높다.

LH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가 합병돼 탄생한 공기업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직원 9천500여명에 자산 규모만 184조원에 달한다.

LH의 핵심 기능인 신규택지 공급이나 신도시 등 토지개발 등의 총괄 업무는 유지하되, 개별적인 개발사업은 지자체나 지방 공기업의 역할 비중을 높이는 방안이 우선 거론된다.

LH는 전체 밑그림만 그리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만 수행하게 하면서 구체적인 지역 개발 사업은 그 지역의 실정을 더 잘 알 수 있는 지방공기업 등이 맡게 하는 방안이다.

공공주택 공급 중 건설은 굳이 민간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임대주택의 질적 향상은 정부의 오래된 과제였고 특히나 최근엔 중산층도 살 수 있는 유형통합 임대주택 건설이 추진되는 상황이다.

주택정책 중 주거복지의 중요성이 계속 높아지고 이와 관련한 신규 사업도 꾸준히 늘어남에 따라 LH에 있던 주거복지 기능을 따로 떼어내 별도 조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는 이전부터 나왔다.

이와 관련해 정부 기구로 주거복지청을 신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정치권에서 제기된 바 있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국회에서 LH 조직 개편과 관련한 질의에 주거복지 정책과 관련성이 큰 공공자가주택이나 주거뉴딜 등을 거론하며 "이들 정책의 도입으로 LH의 역할이 재정립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LH를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로 쪼개 2009년 이전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거나 아예 전면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해 사업을 추진할 동력도 떨어진 만큼 기능별로 조직을 나눠 버리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고려해야 할 요인이 너무 많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통합해 지금의 LH가 된 것은 두 기관이 따로 운영되면서 업무 중복과 그로 인한 비효율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통합은 이명박 정권 때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이뤄졌지만 사실 그 논의는 참여정부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LH는 통합 전 두 기관의 마구잡이 사업 확장으로 인한 부채를 떠안아 출범 초기 심각한 유동성 문제로 몸살을 앓아야 했다.

LH의 대규모 조직 개편이 단행된다면 정부의 주택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지금의 비대해진 LH는 사실 정부가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규택지 개발이나 각종 국책사업을 벌이면서 토지보상금 등 그 비용을 LH가 자체 사업을 통해 충당하게 함에 따라 LH의 기능과 권한이 계속 커진 측면이 있다.

신도시 개발에 따른 막대한 토지보상금을 조달하거나 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정부 정책을 수행하려다 보니 LH도 더욱 적극적으로 수익사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부가 2·4 공급 대책 때문에 당장 LH에 대한 해체 수준의 대규모 조직 축소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나 공공기관 직접시행 정비사업 등 2·4 대책의 핵심 내용은 LH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3기 신도시 사업도 현재로선 LH가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당장 7월 3기 신도시 사전청약도 예정돼 있다.



정부는 이들 사업에서 '속도전'을 강조해 왔다. 주택 공급이 부족할 것이라는 불안감에서 초래된 '패닉바잉'을 해소하기 위해 서둘러 주택 공급을 확대해야 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로 한 LH를 갑자기 해체했다간 목표달성이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체 수준의 조직 개편을 결정한다고 해도 중장기 계획으로 추진될 공산이 크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LH를 제외하고 3기 신도시나 2·4 대책을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며 "이는 자칫 주거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고 말했다.

LH의 조직 개편 방안은 이번주 관계기관 협의와 전문가 의견 청취 등을 거치면서 윤곽을 잡아나갈 것으로 보인다.

공직자 땅 투기 의혹 사건의 진행 상황도 LH 조직 개편 논의에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금이야 LH 직원들의 광명 시흥 땅 투기만 집중 부각된 상황이지만 정부 조사나 경찰 수사 대상이 공직자 가족으로, 다른 지자체 공무원이나 지방공기업 종사자 등으로 확대됨에 따라 다른 기관이나 조직 중에서 대규모 땅 투기 사례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bana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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