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몇시간전 여객기 탄 멕시코 대통령…'느슨한 방역' 도마에

입력 2021-01-26 05:44
확진 몇시간전 여객기 탄 멕시코 대통령…'느슨한 방역' 도마에

감기증상 나타난 이후 일반 승객과 비행기 탑승

고강도 봉쇄 없는 멕시코 정부 방역에도 비판 제기돼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지난 23일(현지시간) 북부 누에보레온주를 방문한 자리에서 "팬데믹의 터널에서 곧 빠져나갈 것임을 알리는 작은 불빛이 보인다"고 말했다.

멕시코 대통령이 이전에도 몇 차례 반복했던 '터널 끝의 빛' 낙관론을 다시 꺼내든 이 날은 멕시코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자와 사망자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지 이틀 후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24일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알렸다.

고혈압이 있는 67세 대통령의 확진 소식에 안팎에서 쾌유를 기원하는 메시지가 잇따르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멕시코 정부와 대통령의 '느슨한 방역'에 대한 비판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현재 멕시코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176만 명, 사망자는 14만9천600여 명이다. 확진자는 전 세계에서 13번째, 사망자는 4번째로 많다.

여전히 적은 검사 건수와 높은 양성률, 그리고 세계 최고 수준의 치명률(약 8.5%)을 고려할 때 실제 감염자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11월 이후 확산세가 더욱 가팔라져 병상은 물론 산소 부족까지 심화하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데도 멕시코의 봉쇄 수준은 높지 않다.

멕시코는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확산하기 시작한 지난해 3월 이후 한 번도 입국금지를 하지 않았다. 입국 후 의무격리나 코로나19 음성 진단서 요구 등의 안전장치도 없다.

유럽이나 중남미 여러 나라가 꺼내든 전 국민 외출 제한도 멕시코는 시행한 적이 없다. '자가 격리'는 늘 권고였다.

지난해 3월 말부터 비필수 활동을 금지해 공장과 상점 등이 문을 닫았다가 6월부터 일찌감치 봉쇄를 완화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악화일로인 최근에도 수도 멕시코시티가 식당 야외공간에서 취식을 가능하게 하는 등 경제활동 재개 범위를 점차 넓히고 있다.

봉쇄에 따른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지만, 성급한 결정이라는 비판도 있다.

봉쇄의 대안이 될 철저한 검사나 추적 역시 이뤄지지 않는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 개인의 방역 준수 태도도 늘 논란거리였다.

그는 전 세계 각국 정상 중에서 가장 고집스럽게 마스크를 외면해온 정상이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세계보건기구(WHO) 등의 입장이 변하는 동안에도 "전문가들이 마스크 착용을 권고하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는 등의 말을 하며 공식 석상에서 '노마스크'를 고수했다.



마스크를 쓴 멕시코 대통령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여객기에 오를 때가 거의 유일하다. 전용기 없이 여객기로 국내외 출장을 다니는 그는 모든 승객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항공사 규정은 준수한다.

코로나19 확산 초반 몇 개월을 제외하고는 매주말 지방 방문도 좀처럼 거르지 않았다. 확진 직전에도 누에보레온주와 산루이스포토시주를 찾았다.

멕시코 일간 엘우니베르살은 대통령이 확진 사실을 알리기 불과 몇 시간 전 산루이스포토시에서 멕시코시티로 향하는 국내선 이코노미석에 탑승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날인 23일 이미 감기 증상이 나타나 검사를 요청했다. 마스크를 썼다고는 하지만 코로나19 의심 증상이 있는 상태에서 다른 승객들과 함께 여객기를 탄 것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경시하는 듯한 비과학적인 낙관론으로도 논란을 불러왔다. 국민의 불안을 달래기 위한 의도일 수 있지만, 기자회견에서 코로나19를 막아준다는 부적을 꺼내 보여주기도 했다.

전날 확진 소식을 알리면서도 멕시코 대통령은 "나는 언제나처럼 낙관주의자"라고 말했다.

멕시코 언론인 세르히오 사르미엔토는 이날 일간 레포르마 칼럼에서 "부적도 마스크 경시가 부추긴 감염을 막진 못했다"며 대통령의 신속한 쾌유와 더불어 그가 "이 치명적인 질병의 위험을 깨닫길 바란다"고 했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