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아 첫 흑인상원의원 워녹…'목화따던 팔순노모의 손' 사모곡

입력 2021-01-06 21:09
수정 2021-01-06 22:33
조지아 첫 흑인상원의원 워녹…'목화따던 팔순노모의 손' 사모곡

가난한 목사 집안 막내아들 '흙수저' 출신 목사…미 언론 "역사 만들어"

"이것이 바로 미국"…'흑인 민권운동 대부' 마틴 루서 킹 목사-루이스 하원의원 '후광'도



(서울=연합뉴스) 홍준석 기자 = 5일(현지시간) 치러진 미국 조지아주 연방 상원의원 결선투표에서 현역인 공화당 켈리 뢰플러 의원을 꺾고 승리한 라파엘 워녹(51)은 팔순이 넘은 노모에게 헌사를 바치는 '사모곡'으로 당선 소회를 피력했다.

그는 엎치락뒤치락이 반복되는 피 말리는 접전 끝에 대역전극을 쓰며 '딥 사우스' 중 하나인 조지아주가 배출한 첫 흑인 상원의원이 되는 '역사'를 썼다. AP통신 등 미언론은 워녹의 승리에 대해 "역사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워녹은 개표 윤곽이 분명해진 자정 무렵 당선 소감 발표를 통해 승리를 선언한 뒤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감성 어린 연설로 심금을 울렸다고 미언론들이 보도했다.

그는 가난했던 유년기를 떠올리며 "다른 누군가의 (밭에서) 목화를 따던 82세 된 손이 며칠 전 투표소로 가서 그의 막내아들을 미국의 상원의원으로 뽑았다"며 노모가 직접 자신에게 한 표를 행사한 일을 거론하며 "이것이 바로 미국"이라고 말했다.

워녹은 "따라서 나는 미국에서 역사적인 이 순간에, 나를 이곳까지 인도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여정이 이곳에서 일어났음을 알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오늘 밤 당신 앞에 왔다"며 "우리는 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고 이야기를 들었지만, 희망과 고된 노력, 그리고 우리를 지지해주는 이들과 함께 라면 뭐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고 감회를 내비쳤다. 그러면서 "미국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거듭 말했다.

뉴욕타임스(NYT) 등 미언론에 따르면 워녹은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가난한 집안의 12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다.

제2차 세계대전에 육군으로 참전하면서 자동차 관련 기술을 배운 워녹의 부친 조너선은 작은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했다.

워녹은 평일이면 이 정비소에서 일했고, 주말에는 오순절 교회에 나갔다.

부친은 워녹에게 매일 아침 일어나면 일정이 없더라도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습관을 들이라고 가르쳤다.

워녹의 친구들은 "오늘날까지도 워녹은 동이 트면 의관을 갖추는 게 몸에 배어있다"고 말했다.

워녹의 어머니 벌린은 자라면서 십대 시절 여름이면 담뱃잎과 목화를 수확했다고 워녹은 회상하기도 했다.

워녹의 부모 모두 목사로 활동했다.

여성 목사를 인정하지 않는 오순절 교회에서 모친 벌린이 설교단에 올랐다는 점은 워녹 가문이 성경 해석에 개방적임을 보여준다고 NYT는 전했다.

일찌감치 부모로부터 종교적 영향을 받은 그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 촉망받는 목사였다고 한다.

워녹은 불과 11살의 나이에 설교를 시작했다.

대표적인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의 모교인 모어하우스대에 연방정부 무상 장학금을 받고 진학한 워녹은 목사 지망생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설교로 기립박수를 받기도 했다.

2005년 흑인 민권 운동의 대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가 생전에 설교하며 목회활동을 펼치던 에버니저 침례교회의 최연소 담임목사가 됐다.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의 흔적이 진하게 남은 이 교회는 1960년대 흑인 인권운동을 이끌다 지난해 7월 타계한 존 루이스 민주당 하원의원의 장례식이 거행된 곳이기도 하다. 워녹은 당시 장례식에서 추모 설교를 했다.

이번 대선에서 조지아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28년 만에 승리하는 '이변'을 쓴 것을 두고 '죽은 루이스가 산 트럼프를 잡았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다.

워녹이 정계에서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4년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 제도인 '메디케이드'(Medicaid) 확대 운동을 이끌면서부터다.

당시 워녹은 마약 중독과 소득 격차로 시달리는 흑인들을 위해 건강보험개혁법(Affordable Care Act)에 따라 메디케이드(저소득층 의료지원)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2006년 쓴 학위 논문에서도 같은 주장을 펼쳤다.

워녹은 이후에도 "필수노동자들에게 적절한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는 등의 사회 참여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냈다고 미언론이 보도했다. 그는 이날 당선 소감을 통해 상원으로 들어가 자신을 찍었든 찍지 않았든 조지아주 사람들을 위해 일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hanks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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