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코로나19 백신 아직 안맞아…전문가 권고하면 꼭 맞을 것"(종합)
"나발니, 미 정보기관 지원받아 감시당한 것…독살 시도는 없었다"
"내년 종료 '신전략무기감축협정' 연장 협상 준비돼…바이든 당선인에 기대"
"2024년 대선 재출마 여부 아직 결정안해"…4시간30분 동안 '마라톤 회견'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아직 자국 전문가들이 개발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접종받지 않았다고 17일(현지시간) 밝혔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주요 방송 채널을 통해 생중계된 화상회의 형식의 연례 기자회견에서 자국 보건부 산하 '가말레야 국립 전염병·미생물학 센터'가 개발해 대중 접종이 시작된 코로나19 백신 '스푸트니크 V'를 맞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푸틴은 "전문가들은 현재 공급되는 백신은 일정 연령대(18~60세)의 주민들을 위한 것이라고 한다. (68세인)나 같은 사람에게는 아직 오지 않았다"면서 "전문가들의 권고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며 가능해지면 반드시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백신은 효과가 있고 안전하다"면서 "접종받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푸틴은 지난 8월 러시아 야권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독살하려던 시도가 러시아 정보기관인 연방보안국(FSB) 산하의 독극물팀에 의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최근 서방 언론 보도와 관련 "이는 탐사 보도가 아니라 미국 정보기관의 자료를 합법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CNN 방송은 앞서 14일 영국 탐사보도 전문매체 '벨링캣', 독일 더슈피겔 등과의 공동 취재 결과를 토대로 지난 8월 나발니 독살 시도에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FSB 특수요원들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나발니는 지난 8월 국내선 항공편으로 시베리아 톰스크에서 모스크바로 이동하던 중 기내에서 갑자기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이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는 사흘 후 독일 베를린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고 의식을 회복했으나 퇴원 후에도 현지에 계속 머물며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푸틴은 자신의 정적으로 통하는 나발니가 서방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발니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면서 "베를린 병원에 있는 이 환자는 미국 정보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는 흥미를 끄는 일이며 (우리) 정보기관이 당연히 그를 감시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이것이 그를 독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 일이 누구에게 필요하겠나"라고 반문했다.
나발니가 미 정보기관과 연계돼 일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러시아 당국이 그의 독살을 시도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푸틴은 "만일 누군가가 정말 그를 독살하려 했으면 아마 끝까지 했을 것"이라면서 "그의 아내가 내게 요청했을 때 나는 곧바로 그를 독일로 치료하러 보내도록 지시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는 나발니가 옛 소련 시절 개발된 독극물인 '노비촉'에 중독됐다는 독일 등의 주장에 대해 "누군가가 화학무기 '노비촉'이 사용됐다는 자료가 있으면 그 정보를 우리에게 달라"고 공세를 폈다.
푸틴은 '약 20년 동안 러시아를 다스리면서 최악의 수준으로 악화한 러-서방 관계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가'라는 BBC 방송의 질문에 대해서도,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각종 국제조약에서 탈퇴한 건 서방이라면서 역공을 취했다.
그러면서 세계를 '공격적인 국가'와 '선량한 국가'로 나눈다면 러시아는 서방과 비교하면 선량한 나라라고 주장했다.
그는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옛 소련권으로 동진하지 않겠다는 구두 약속을 하고도 지키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미국은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항공자유화 조약 등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고 내년 2월 만료되는 핵무기 통제조약인 '신전략무기 감축 협정'(New START·뉴스타트)에서도 탈퇴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러시아는 미국과의 뉴스타트 협정 연장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도 이 협정을 유지하기 위한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얘기한 것으로 안다"고 기대를 표명했다.
만일 미국이 협정을 파기하면 이미 시작된 군비 경쟁 악화가 불가피하겠지만, 러시아는 미국도 아직 보유하지 못한 극초음속 무기 등의 전략무기들을 개발해 두고 있기 때문에 충분한 억지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바이든 정권에서 미국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는 바람도 표시했다.
푸틴은 4기 임기가 끝나는 2024년 대선에 재출마할지 여부에 대해선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출마할지 여부는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며 형식상으로 이 허락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두고 보자"고 여운을 남겼다.
러시아는 앞서 지난 7월 국민투표를 통해 현재 4기 집권 중인 푸틴 대통령이 2036년까지 장기 집권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개헌안을 채택했다.
이에 따라 올해 68세인 푸틴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72세가 되는 2024년 5기 집권을 위한 대선에 재출마해 84세가 되는 2036년까지 6년 임기의 대통령직을 두 차례 더 역임할 수 있게 됐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예년과는 달리 원격회의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푸틴 대통령의 기자회견은 무려 4시간 30분 동안 이어졌다.
역대 최장 기자회견으로 기록된 2008년의 4시간 40분에 조금 못 미치는 '마라톤 회견'이었다.
cjyou@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