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훼방 없었다면 '날지 않는 새' 훨씬 더 많았다

입력 2020-12-03 10:59
인간 훼방 없었다면 '날지 않는 새' 훨씬 더 많았다

비행능력 포기 진화 광범위하게 진행됐지만 멸종

"날지 않는 부엉이, 딱따구리 같이 살고 있었을 것"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인간이 진화를 방해하지 않았다면 날지 않는 부엉이, 딱따구리가 가능했을까?

새는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진화적으로 비행을 포기할 확률이 높으며 인간에게 멸종되지 않았다면 펭귄이나 타조 등 처럼 날지 않는 새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생물다양성·환경 연구센터의 페란 사욜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인간 등장 이후 멸종한 조류를 분석해 얻은 결과를 과학 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를 통해 발표했다.

연구팀은 우선 화석 기록과 문헌 등을 토대로 약 12만6천년 전 '후기 플라이스토세' 이후 현재까지 멸종한 조류의 자세한 목록을 만들었다.

그 결과, 581종이 멸종한 것으로 집계됐으며 이 중 166종이 날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났다.현재 날지 못하는 조류는 60종만 남아있다.

이런 결과는 날 수 없는 새가 이전 연구에서 추정되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으며, 비행 능력을 갖춘 새보다 멸종 가능성이 더 높았다는 점을 확인해주는 것으로 지적됐다.

논문 공동 저자인 생물다양성·환경연구센터의 팀 블랙번 교수는 이와 관련 "새는 하늘을 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쓰는데, 많은 조류 종이 섬처럼 일상적인 포식자가 없어 날 필요가 없는 환경에서는 에너지를 다른 용도로 쓰기 위해 날지 않는 쪽으로 진화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행하게도 이런 환경에 인간이나 인간을 따라다니는 쥐나 고양이 등이 갑자기 등장하면 날지 못하는 새들은 손쉬운 사냥감이 돼 멸종으로 이어지고 만다"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세계의 군도(群島) 대부분이 인간이 등장하기 전에 날지 못하는 조류 종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지적했다.

예컨대 뉴질랜드에는 멸종한 모아를 포함해 모두 26종이 있었으며, 하와이에도 23종의 날지 못하는 새가 있었지만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연구팀은 멸종한 조류 종을 포함하면 나는 것을 포기한 진화가 현존하는 조류만 따졌을 때 예상되던 것보다 적어도 4배 이상 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사욜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조류 종이 비행을 하지 않는 쪽으로 진화하는 것이 광범위한 현상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면서 "현재 12개 과(科)만 날지 않는 조류 종(種)을 갖고 있지만, 인간에게 멸종되기 전에는 적어도 40개 과에 달했다"고 했다.

이런 멸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 날지 않는 부엉이와 딱따구리, 따오기와 같이 살고 있었겠지만 슬프게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고 했다.

그는 "인간은 세계 생태계를 실질적으로 바꿔놓아 수백 종의 동물을 멸종시켰다"면서 "날지 못하는 새의 멸종에서 보듯 인간의 영향은 진화 양상을 왜곡해 실제 벌어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편향된 이해를 하게 한다"고 덧붙였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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