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에 들끓는 페루 민심…20년 만에 최대규모 시위
의회의 대통령 축출에 반발 지속…시위대·경찰 충돌 10여명 부상
(멕시코시티=연합뉴스) 고미혜 특파원 = 페루 의회의 대통령 탄핵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계속 끓어오르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엘코메르시오 등 페루 언론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수도 리마를 비롯한 페루 전역에서는 마르틴 비스카라 전 대통령의 탄핵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페루에서는 지난 9일 의회가 뇌물수수 의혹이 제기된 비스카라 전 대통령을 탄핵한 후부터 탄핵 결정에 항의하고 의회와 임시 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닷새 연속 이어지고 있다.
특히 12일 밤 시위는 남미 페루에서 20년 만에 나타난 최대 규모 시위라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20년 전인 1990년엔 알베르토 후지모리 당시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페루 전역에서 벌어졌다.
페루 정치분석가 카를로스 멜렌데스도 페루에선 2000년 반정부 시위 이후 이 정도 규모의 시위가 없었다고 블룸버그에 전했다.
전날 격렬한 시위 속에 취재 중이던 AFP통신 기자를 포함해 11명이 부상했다고 페루 국가인권조정관실은 밝혔다. 부상자 중 2명은 총상을 입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경찰의 과도한 무력 사용을 비판했다.
이 같은 거센 후폭풍은 어느 정도 예상됐다.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한 사유는 '도덕적 무능'이었다. 비스카라 전 대통령이 주지사 시절이던 2011∼2014년 인프라 공사 계약을 대가로 기업들로부터 230만솔(약 7억2천만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따른 것이다.
비스카라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고, 아직 검찰 수사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의회는 무리하게 탄핵을 강행했다.
페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에 허덕이고 있는 때였고, 비스카라 전 대통령의 임기는 8개월가량 남은 상태였다.
더구나 2018년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 낙마 후 부통령으로서 대통령직을 승계한 중도 성향의 비스카라는 강도 높은 반부패 개혁을 추진하며 안정적인 여론의 지지를 받아왔다.
이에 반해 부패한 기성 정치인 집단의 이미지가 강했던 의회는 국민 대다수의 탄핵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의회 지지 기반이 전무한 비스카라 전 대통령 탄핵을 밀어붙인 것이다.
곧바로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중도우파 야당 소속의 마누엘 메리노 국회의장은 내년 4월로 예정된 대선 일정을 그대로 준수할 것이며, 자신의 임기 중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성난 민심을 전혀 달래지 못했다.
메리노 임시 대통령을 코로나19와 비교한 피켓을 들고 리마 시위에 참여한 호세 베가는 로이터에 "페루 전체가 불붙었다. 우리는 모두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위 참가자 루이스 바르달레스(34)는 AFP통신에 "페루 국민은 이것이 쿠데타라고 생각해서 들고 일어났다"며 "내 아이들이 법이 존중되는 민주국가에서 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위대가 든 팻말엔 "비스카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 "의회는 멈추지 않는 팬데믹", "코로나19도 메리노만큼 해롭진 않다"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탄핵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비판까지 더해지며 시위대의 분노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인구 3천300만 명의 페루는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자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준이며, 오랜 봉쇄 속에 올해 경제도 10% 이상 후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mihy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