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샵샵 아프리카] '나라가 멈춰버린 날' 봉쇄령 속 교민들의 애환

입력 2020-11-14 08:00
[샵샵 아프리카] '나라가 멈춰버린 날' 봉쇄령 속 교민들의 애환

남아공 교민 코로나19 '집콕 100일' 백일장 출간…갇힌 삶의 재발견, 위트와 통찰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나라가 멈춰버린 이 날, 내 삶도 멈췄다."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교민들을 대상으로 한 백일장 대회에서 일반부에 입선한 박선희 씨의 글 '산책' 첫 문장이다.

남아공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 3월 하순부터 13일 현재까지 록다운(봉쇄령) 장장 232일째를 맞고 있는 가운데 그 첫날에 대한 감상이다.

해외에서 생활하는 교민들이 다 함께 한글로 코로나19 록다운으로 인한 '집콕 100일'을 주제로 백일장 대회를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 입선작들이 이번에 '희망봉에서 그대에게'(시선사 간)라는 책으로 나왔다.

한국은 봉쇄령을 겪지 않고도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비교적 잘 통제한 편이다.

남아공의 경우 생필품 구입 등을 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출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술, 담배 판매 금지 등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록다운 중의 하나를 경험했다.

지금은 가장 낮은 록다운 1단계이고 일상적 삶도 어느 정도 돌아온 편이지만 록다운 기간 경제와 사회적 활동에 드리운 트라우마는 상당했다.

총 11편의 교민 글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이국 삶의 애환과 일상의 재발견, 위트와 통찰 등이 잔잔하고도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박씨는 윗글에서 "남아공 정부의 록다운 발표 직전,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정부의 규제에 대한 무성한 소문이 돌았다"며 "잔뜩 긴장이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식품과 생필품 외에도 당장 필요 없는 물건까지 쇼핑 바구니에 가득 채워 넣으며 비상 상황에 대비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그러면서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과연 이 (낯선) 삶이 다시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답이 없이 계속 불안 속에서 매일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고 토로했다.

밖에 나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만 세 살, 막 5개월에 접어든 두 아들과 온종일 집안에서만 지내며 '고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록다운 완화로 오전에 잠깐 밖에 나가 산책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몇 달 동안 자신도 모르게 훌쩍 커버린 아이를 보면서 "눈에 부시도록 아름다워 갑자기 눈물이 났다"고 고백한다.

김혜림 씨는 '청첩장'이란 글에서 결혼을 앞두고 청첩장이 완성되던 날 날벼락처럼 코로나로 인한 비상사태가 선언됐다고 적었다. 처음에 21일만 한다던 록다운은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자꾸만 연장됐다.

결국 "그렇게 청첩장은 그 누구에게도 전달되지 못하고 우리만 아는 비밀이 되었습니다."

김씨는 예식장 예약을 미루고 신혼여행을 취소했지만 한참 전 계약한 신혼집에 들어가는 날을 더 미룰 수는 없었다고 한다.

"정해 놓았던 결혼 날짜에 예배를 드리고 혼인 신고를 하기로 했습니다. 2020년 6월 16일. 그렇게 우리는 웨딩드레스도, 결혼반지도, 하객도 없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는 '가장 기쁜 날, 소중한 분들과 함께 그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라는 청첩장의 평범한 마지막 문장을 '비범하게' 떠올리며 "그날이 올 때까지, 저희 잘 살겠습니다"라고 신혼부부답게 글을 맺었다.

한정현 씨는 '18미터의 나눔'이란 글에서 자신이 면 18미터 등 천 마스크 재료와 고무줄, 바늘 꾸러미, 손가위를 사 '한 땀 한 땀' 만든 수제 마스크를 남아공 현지 이웃들과 나누면서 느낀 보람을 적었다.

그는 그 계기와 관련, "언제 끝날지 모르는 봉쇄령 속에서 무언가 홀로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작은 목적을 세워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마스크를 만들어 준 아랫집 해더 아줌마는 본인 페이스북 계정에 '진정한 이웃사랑이다'라는 제목으로 천 마스크 사진과 글을 올려주기도 했다고 전했다.

다른 이웃들도 한씨의 우체통에 초콜릿과 감사의 손편지를 넣어주었다고 한다.

이밖에 중고등부 이예인 양은 '이웃집 내 고양이'라는 글에서 록다운으로 친구도 마음대로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웃집 고양이가 자신을 찾아오는 친구가 됐다고 얘기했다.

김서진 군은 '한밤중 이상한 소리'에서 "그날 밤 내 귀에 들렸던 그 소리는 내 내면의 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상황에 대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이 만들어낸 소리"라며 록다운 상황에서 경험한 미스터리한 에피소드를 잘 묘사했다.

초등부 박민국 군은 '아침, 낮, 저녁!'이란 시에서 "아침에/ 나는 얼굴 씻고요/ 나는 손 씻고요/…낮에/ 나는 손을 다시 씻어요/ 깨끗이, 깨끗이, 깨끗이/…내손은 물고기처럼/ 물에서 헤엄을 쳐요./ 밤에/ 나는 내몸을 씻어요…내몸은 돌고래처럼/ 하늘을 날고, 춤을 추어요/"라면서 코로나 상황에서 귀찮을 법한 씻기의 일상화를 동심으로 노래했다.

"엄마가 말했어요./ 코로나바이러스는 깨끗한 것 싫어한대요"라고 읊은 박 군은 같은 글을 영시로도 썼다.

교민들의 글 앞에는 남아공에서 교민 장학사업을 하는 장승규 K-장학재단 이사장의 시집 '희망봉에서'가 같이 실려 있다.

장 시인은 머리말에서 "아프리카 최남단 여기 희망봉에까지 염병이 돕니다. 봉쇄된 공간에도 다행히 틈은 있어서 밤낮 하늘만 쳐다봅니다…시름없는 그날이 오늘이었으면 합니다"라고 적었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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