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 상징' 나카소네 뒤늦은 장례…日 추모 분위기 띄우기

입력 2020-10-16 05:01
수정 2020-10-16 08:43
'우파 상징' 나카소네 뒤늦은 장례…日 추모 분위기 띄우기

정부·당 합동 장례식에 21억원 쓰고 국립대 등에 조기게양·묵념 요구

총리 최초 야스쿠니신사 참배…개헌 등 우경화 주도 인물 평가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일본 우파 정치의 상징으로 불리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 장례식이 17일 열린다.

작년 11월 사망한 나카소네 전 총리의 일본 정부·집권 자민당 합동장은 당초 올해 3월 열릴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영향으로 연기된 바 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은 뒤늦은 장례식에 20억원대 비용을 쓰고, 국립대 등에도 조기 게양과 묵념을 통한 조의 표명을 요구해 논란을 자초했다.



◇ 최고급 호텔서 개최…정부 예비비 지출

나카소네 전 총리 합동장은 도쿄도(東京都) 미나토(港)구에 있는 최고급 호텔인 그랜드 프린스 신다카나와(新高輪)에서 열린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지난달 28일 기자회견에서 정부와 집권 자민당이 합동으로 치르는 이번 장례식 비용이 총 1억9천만엔(약 21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체 비용 중 절반(9천643만엔)을 정부가 일반예비비에서 지출하고 나머지를 자민당이 부담한다.

일본 내에선 과도한 장례 비용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지만, 일본 정부는 예정대로 합동장을 치르기로 했다.

게다가 스가 내각은 장례식 때 전국 국립대 등에 조기 게양과 묵념을 통해 조의를 표명할 것을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합동장 당일 각 부처가 조기를 게양하고 오후 2시 10분에 묵념을 하기로 결정했다. 아울러 같은 방법으로 애도의 뜻을 표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 협력을 요청하기로 했다.

◇ 국립대에 조기게양 등 요구…지자체·교육위원회엔 요청

가토 관방장관은 같은 날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에게 관련 내용을 주지할 것을 요구하는 문서를 보냈다.

이에 문부과학성은 국립대와 소관 독립행정법인 등에 가토 장관 명의의 문서를 첨부해 "이런 취지에 따라 잘 대처해달라"는 통지를 보냈다.

아울러 도도부현(都道府縣·광역자치단체) 교육위원회에도 "참고로 알려드립니다"라며 가토 장관 명의 문서를 보내면서 기초자치단체 교육위원회에도 주지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기초자치단체 교육위원회는 공립 초·중·고등학교를 관할한다.

총무성도 지난 7일 광역 및 기초 자치단체장에게 "정부의 조치와 같은 방법으로 애도의 뜻을 표하도록 협력 부탁합니다"라는 내용의 문서를 발송했다.

문부과학성이 관할하는 국립대에는 정부 부처와 같은 방식의 조의 표명을 요구한 것이고, 지자체와 교육위원회에는 협조를 요청한 셈이다.



◇ "정치인 장례식에 이렇게까지"…교육 중립성 침해 비판

스가 내각의 나카소네 전 총리 추모 분위기 띄우기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히로타 데루유키 일본대 교수(교육학)는 "지금 시대에 걸맞지 않다"며 "정치인 장례식에 정부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폭넓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고 교도통신은 지난 14일 보도했다.

입헌민주당 등 일본 야당은 국립대 등에 대한 조의 표명 요구는 교육의 중립성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교육기본법은 학교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교육을 금지하고 있다.

15일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의 정례 기자회견에서도 나카소네 전 총리 조의 표명 요구는 교육기본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가토 장관은 이에 대해 "조의 표명을 할지는 관계 기관에서 자주적으로 판단할 것"이라며 "강제를 수반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나카소네 전 총리에 대한 조의 표명에 대해 "특정 정당 지지를 위한 정치 활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문부과학성도 교육의 중립성 침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반박했다.

일본 총리 합동장 때 문부과학성이 국립대 등에 조의 표명을 통지한 사례는 2000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전 총리 합동장을 비롯해 과거 3차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가장 최근에 열린 합동장인 2007년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장례식 때는 국립대 등에 대한 조의 표명 요구가 없었다.



◇ "우파의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 작용했을 것"

나쁜 전례를 답습하지 않겠다던 스가 내각이 시대착오적인 전례를 따르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무리한 추모 분위기 조성은 나카소네 전 총리가 일본 우파의 상징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나카소네는 1982년 총리로 취임해 전후 총리 중 5번째로 긴 1천806일(4년 11개월) 동안 재임했다.

1985년 8월 15일 일본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공식 참배했다.

나카소네의 참배는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아베 신조(安倍晋三) 등 후임 총리가 참배할 빌미를 제공했다.

'전후 정치 총결산'을 내걸고 평화헌법 개정 등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이헌모 일본 중앙학원대학 법학부 교수는 16일 연합뉴스에 스가 내각의 나카소네 전 총리 추모 분위기 띄우기에 대해 "일본 우익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hoj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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