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익의 환호…야스쿠니 참배에 투영된 '아베 시즌3' 가능성

입력 2020-09-20 11:23
우익의 환호…야스쿠니 참배에 투영된 '아베 시즌3' 가능성

개헌·외교·안보 분야 활동할 듯…선거 6연속 대승기록 보유

이토 히로부미는 퇴임 후 3번 복귀…아베, 스가보다 6살 어려



(도쿄=연합뉴스) 이세원 특파원 = 일본 총리로 최장기간 재임한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행보에 눈길이 쏠린다.

앞서 "한명의 원으로서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계획을 밝힌 아베는 퇴임 사흘만인 19일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전격 참배해 뭇 언론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아베 계승'을 표방하며 출범한 스가 내각 구성원의 76%(21명 중 16명)가 아베 정권에서 각료를 지낸 적이 있는 인물로 채워진 가운데 이번 참배는 아베에 대한 관심을 재확인한 사건이었다.

일본 언론은 물론이고 한국, 중국, 서구 언론이 아베의 참배 사실을 신속히 보도했다.

보수·우익 진영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일본 정부가 공식 사과한 '고노(河野)담화'를 검증하도록 국회에서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던 우익 성향 야마다 히로시(山田宏) 자민당 참의원 의원은 아베의 참배에 대해 "고맙다"고 반응했다.



그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아베가 재임 중 참배한) 2013년 12월 26일 이후 안타깝게도 여러 사정으로 총리로서의 참배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선되면 꼭 트럼프 대통령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실현에 모든 힘을 다해주면 좋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20일 요미우리(讀賣)신문에 따르면 아베의 측근인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자민당 참의원 의원은 "매우 무겁고 멋진 판단을 했다"고 반응했다.

자민당에서 상대적으로 비둘기파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전 외무상도 "나라를 위해 소중한 목숨을 바친 분들에게 존경의 뜻을 표하는 것은 정치가에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며 "이것은 마음의 문제이므로 적어도 외교 문제로 삼아야 할 이야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 트윗에 대해 20일 오전 8시50분 현재 16만6천명 정도가 호감을 표시했다.

이 가운데는 "언젠가 다시 3번째 등판을 강하게 강하게 기대하고 있다"며 아베가 나중에 다시 총리가 되면 좋겠다는 뜻을 밝힌 트위터 이용자도 있었다.

2013년 야스쿠니신사 참배 후 한국과 중국이 강하게 비판했고 미국이 "실망했다"는 성명을 내는 등 총리 신분으로 참배하면 여러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된다.

야스쿠니신사 참배가 보수·우파 세력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임에도 현직 총리로서는 실행하기에는 문턱이 높은 셈이다.

일본이 전쟁 중 저지른 과오를 직시하려는 움직임을 '자학 사관'으로 규정하는 데 사실상 앞장섰던 아베는 현직 총리라는 부담에서 벗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야스쿠니신사로 달려가 우익 성향을 인증했고 이에 대해 그의 지지층이 환호한 양상이다.

산케이신문은 아베가 참배 권유에 대해 이달 초 "지금 내가 가면 다음 정권에 부담을 주는 것이 된다. 퇴임 직전에 가면 그것은 (영령 추도 목적보다) 상당히 나 자신을 위한 것이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면서 임기 중 참배로 인해 스가 정권에 파장이 미치거나 외교상 손발이 묶이는 사태를 피하려고 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퇴임 직후 이뤄진 참배는 외교적 위험 부담은 줄이면서 아베의 정치적 구심력을 확인하는 재료가 된 셈이다.

만약 스가가 정치적 부담 등을 고려해 재임 중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아베가 참배를 되풀이하며 보수·우익 진영의 지지를 흡수하는 시나리오도 생각해볼 수 있다.



교도통신은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향해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양새"라고 이번 참배를 분석했고 "솔직히 말해 이것은 선거 활동이다. 암반 지지층의 표 굳히기"라고 반응한 트위터 이용자도 있었다.

헌법 개정, 일본인 납치 문제 등을 미완의 과제를 놓고 퇴임하게 돼 장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고통을 느낀다고 밝힌 아베가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해 재기를 모색하거나 미완의 꿈을 이루려고 시도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적 기지 공격 능력 등 새로운 대책을 확보하라고 퇴임 직전에 총리 담화를 발표하기도 했던 아베는 친동생인 기시 노부오(岸信夫)가 스가 내각에서 방위상에 기용돼 안보 정책에서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스가 총리는 취임 전부터 외교 정책에 관해서는 아베와 의논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아베의 역할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재임 중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한 아베는 자신이 외교 특사로 나설 생각이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19일 열린 고(故) 리덩후이(李登輝) 전 대만 총통 고별 추도 행사에 "일본과 대만의 우호친선, 대만의 민주주의 발전에 위대한 공헌을 한 것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는 추도 메시지를 보내며 스가 정권의 아베 외교 테이프를 끊었다.

아베가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로 복귀한 후 중·참의원 선거 6연속 대승 기록을 세운 만큼 스가 이후 총리가 정국을 제대로 주도하지 못하면 아베의 정치 수완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늘어나며 재등판론이 점화할 수도 있다.

스가는 정권의 과제 중 하나로 개헌을 꼽았으며 아베가 임기 중 이루지 못한 개헌을 위해 "한 의원으로서 앞으로 힘을 내고 싶다"고 밝힌 만큼 개헌 논의가 활발해지면 아베의 역할은 더 커질 수 있다.

일본에서는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1841∼1909)가 퇴임했다가 다시 취임하기를 3번 되풀이해 4차례 재임했고, 가쓰라 다로(桂太郞·1848∼1913)는 2차례 복귀해 3차례 총리를 지냈다.

아베는 1차 집권기(2006년 9월 26일∼2007년 9월 26일·366일)를 마치고 물러난 후 정계에 머물다 2012년 12월 총리로 복귀해 최장 기록을 세웠다.

한 차례 물렀다가 총리로 복귀한 사례는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1838∼1922),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1835∼1924), 오쿠마 시게노부(大?重信·1838∼1922), 야마모토 곤노효에(山本權兵衛·1852∼1933) 등이 있다.

아베는 20일 기준 만 65세로 스가 총리보다 나이가 6살 적고, 이날 만 80세 생일을 맞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보다 15살 젊다.

sewonl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