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격 지수 역대 최고…한은 "임대인 월세 선호 등이 요인"

입력 2020-08-09 06:15
수정 2020-08-09 06:29
전세가격 지수 역대 최고…한은 "임대인 월세 선호 등이 요인"

집주인, 전세보증금 4∼7% 월세로 받아…정기예금 금리의 최소 4배

세입자, 전세대출금리 평균 2.8%지만…전세 씨마르면 무용지물



(서울=연합뉴스) 은행팀 = 지난달 전국 전셋값이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집값 상승과 더불어 부동산 보유세 강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 움직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행은 이런 전셋값 오름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는데, 주요 근거 중 하나가 집주인들의 '월세 선호'에 따른 전세 감소 추세다.

현재 시중 은행들의 정기예금 금리가 평균 연 0.8%에 불과하지만, 서울과 수도권에서 집주인들은 보통 전세보증금의 4∼6%에 해당하는 금액을 월세로 받을 수 있는 만큼 어떻게 보면 당연한 현상이다.

하지만 연 2%대 중후반의 금리로 전세자금을 빌릴 수 있는 세입자들의 입장에선 전세보다 월세 부담이 훨씬 크다. 여당과 정부가 현재 법정 전월세 전환율에 시중금리를 연동시키고 전환율을 강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도 최고…1년새 5.5% 뛰어

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이 집계한 전국 주택 전세가격 지수는 지난달 100.898(기준 100=2019년 1월 가격수준)을 기록했다. 아파트 3만1천800가구, 단독주택 2천500가구, 연립주택 2천가구 등을 대상으로 전세 가격을 조사한 결과다.

이는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86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지금보다 현저히 낮은 1986년 이전 전셋값을 고려할 때 사실상 역대 최고 기록이다.

전세가격 지수는 2018년 11월 100.045로 올랐다가 이후 2019년 9월(99.245)까지 10개월간 줄곧 떨어졌지만, 이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결국 사상 최고점에 이르렀다.



서울 지역 아파트만 따지면, 전셋값 상승 속도는 더 빠르다.

7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는 102.437(기준 100=2019년 1월 가격수준)로, 역시 사상 최고값이다.

지난해 12월(100.141)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서만 약 2.3% 올랐다. 작년 같은달(99.073)보다는 5.5%나 높운 수준이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도 지난 6월 101(기준 100=2017년 11월 가격수준)로 역대 최고 기록을 세웠다. 이 통계는 감정원이 2012년부터 집계한 주택 전세가격 지수에 2003년 11월 이후 KB국민은행의 조사 결과를 반영해 시계열을 연장한 것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지수는 작년 6월 97.8까지 떨어졌지만, 이후 계속 올라 불과 1년 만에 약 3.3% 뛰었다.

한은은 지난달 '주택 매매가격 및 전세가격 전망'을 묻는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 유경준 의원의 서면 질의에 "주택 전세가격의 경우 하락요인보다 상승요인이 우세하다"고 답했다. 향후 전세 공급은 임대인의 월세 선호 현상 등으로 감소하겠지만, 전세 수요의 경우 금리 하락에 따른 전세자금 대출 여력 증가와 신도시 공급주택에 대한 청약 대기 등의 영향으로 계속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한은의 진단이다.

아울러 시중은행 부동산 전문가들은 세입자의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 상한제 등의 내용이 담긴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지난달 3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 시행되기에 앞서 전세 물량이 줄고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올려받는 현상도 전셋값 상승 요인으로 꼽고 있다.

◇ 현 금리에서 세입자 월 전세비용 133만원<월세비용 220만원

한은이 전세 공급 감소의 배경으로 거론하는 '임대인의 월세 선호' 현상은 사실 시중 금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8일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정기 예금 금리는 2년 기준으로 연 0.48∼1.1% 수준이다. 1%대 금리는 여러 까다로운 우대 조건을 모두 갖춰야 가능한 것으로, 사실상 예금 금리 '0%대 시대'라고 봐야 한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 6월 신규 취급액 기준 은행권 저축성예금 금리의 평균도 연 0.88%에 불과했다.

동작구 한 아파트(전용면적 114.65㎡)의 전세 보증금은 평균 약 5억7천만원 정도인데, 만약 이 집주인이 보증금을 정기예금에 2년간 묻어 둘 때 기대할 수 있는 이자 수입은 연 456만원(예금금리 0.8% 적용·세전), 월 38만원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재 같은 단지·평형 아파트의 월세는 150만원(보증금 3억원) 수준이다. 보증금 3억원의 운용 수익을 아예 고려하지 않아도, 단순 계산상 월세 임대인의 월수입이 전세의 3∼4배에 이르는 셈이다.

이 경우 시장에서 형성된 전월세 전환율은 보증금 차액 2억7천만원(5억7천만원-3억원)에 대한 연간 월세 합 1천800만원의 비율인 6.6% 정도로 볼 수 있다.

우병탁 신한은행 부동산 투자자문센터 팀장은 "현재 시장에서 형성된 전월세 전환율은 서울 지역 4∼5%, 수도권 5∼6%, 지방 7∼10%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세입자 입장에서는 당연히 현재의 저금리 환경에서 월세가 전세보다 불리하다.

8일 현재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시중은행의 전세자금 대출 금리는 1.84∼3.81% 수준이다.

사례 아파트의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은행에서 모두 빌린다고 가정해도 연 1천596만원(평균 금리 2.8% 적용), 월 133만원이면 거주에 필요한 비용(이자)을 감당할 수 있다. 하지만 월세를 선택할 경우 3억원 전세 보증금 대출에 대한 연 840만원, 월 70만원의 이자에 월세 150만원까지 달마다 220만원의 지출을 감수해야 한다.

갈수록 전세를 월세로 바꿔 놓는 집주인, 전세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전셋값이 뛰는 이유다.



◇ 전월세 법정 전환율 시중금리 연동 방안까지…"세입자 부담 줄지만 주거품질 저하·임대공급 감소 가능성도"

여당과 정부는 이런 '전세 소멸' 현상을 막거나 늦추기 위해 현재 4% 수준(한은 기준금리 0.5%+3.5%)인 법정 전월세 전환율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회에서 발의된 여러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는 전월세 전환율 산정식에서 기준금리에 덧붙이는 금리폭을 3.5%에서 3%로 낮추는 방안, 전환율을 기준금리의 2배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 아예 한은 통계월보에 게재된 금융기관 대출 평균금리를 상한으로 못박는 방안, 현 법정 전월세 전환율에 거의 강제력이 없다는 지적을 반영해 전환율이 지켜지지 않을 때 정부가 개입하는 방안 등이 포함됐다.

급격한 월세 전환을 막고 세입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대책들이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전월세 전환율을 크게 낮췄을 때 나타날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우 팀장은 "전환율이 낮아지면 세입자의 부담이 줄겠지만, 아마도 집주인은 이 경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월세 놓은 집에 대한 관리 책임을 세입자에게 떠넘길 가능성이 크다"며 "장기적으로 주거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장은 "전월세 전환율이 시중 금리 수준으로 낮아지면 임대인 입장에서 종부세 등 세금 부담도 커진 상태에서 더 이상 임대사업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민간 임대 물량이 줄어들 것"이라며 "현재 임대 물량의 90% 정도를 민간이 담당하는데, 민간 임대가 감소하면 전체 임대 공급이 부족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shk99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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