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봉 맞으며 참정권 외친 다리 마지막으로 건넌 美흑인운동 대부

입력 2020-07-27 05:34
곤봉 맞으며 참정권 외친 다리 마지막으로 건넌 美흑인운동 대부

17일 별세 존 루이스 의원 운구마차, 55년전 '셀마 행진' 현장 들러

KKK 회원 이름 딴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 '존 루이스'로 개명 여론도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지난 17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대부 존 루이스 하원의원이 차별반대 운동의 상징과 같은 앨라배마주 셀마의 다리를 마지막으로 건넜다.

55년 전 루이스 의원을 비롯한 흑인차별 반대 시위대를 향해 경찰이 무지막지한 폭력을 가하며 '피의 일요일'을 초래한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다. 미국에서는 백인우월주의 단체 회원의 이름을 딴 이 다리를 루이스의 이름으로 바꾸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요일인 26일 루이스 의원의 시신을 담은 관이 말 두 마리가 끄는 마차에 실려 장미꽃잎이 뿌려진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를 천천히 건넜다.

앨라배마주 경찰은 경례로 경의를 표했다. 55년 전 같은 자리에서 스물 다섯살의 청년 루이스 의원을 비롯한 흑인 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고 곤봉을 휘둘렀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거인의 가는 길을 지키러 나온 이들이 '승리는 우리 손에'를 외쳤다. 흑인 민권운동이 불붙은 1960년대에 널리 쓰인 구호다.



1965년 3월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에서 있었던 '셀마 행진'은 흑인 민권운동이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당시 25세였던 루이스 의원은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 의장을 맡아 600명의 시위대를 이끌었다. 이내 '피의 일요일'로 불리는 앨라배마주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됐고 루이스 의원도 두개골에 금이 가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루이스 의원이 바닥에 주저앉은 채 경찰의 곤봉에 맞는 장면이 언론을 통해 보도돼 여론의 분노를 촉발하기도 했다.

루이스 의원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등과 함께 흑인 민권운동을 이끈 6인의 거물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셀마 행진 50주년을 기념한 행진을 재연할 때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 바로 옆에 선 것도 루이스 의원이었다.

미국에서는 루이스 의원의 이름을 따 에드먼드 페터스 다리의 이름을 바꾸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현재 다리에 다름 아닌 백인우월주의 단체 '큐 클럭스 클랜'(KKK)의 구성원이었던 인물의 이름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루이스 의원을 추모하는 6일간의 장례는 전날부터 시작해 30일 킹 목사가 설교하던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침례교회에서 마무리된다. 루이스 의원의 시신은 그사이 워싱턴DC의 의회의사당에도 안치돼 추모객과 마지막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nar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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