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도박의 뒤끝]② 못 갚으면 '온라인 처형'…해외로 보내 감금·폭행

입력 2020-08-02 07:30
수정 2020-08-02 07:41
[청소년 도박의 뒤끝]② 못 갚으면 '온라인 처형'…해외로 보내 감금·폭행

얼굴·주민증 사진 등 개인정보 SNS에 유포…댓글로 살해 협박도

빚 독촉에 몰린 청소년, 사기·절도·강도·마약 밀수 등 2차 범죄도 저질러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도박 중독자들은 돈을 잃고 무일푼이 되면 자책과 함께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다시 돈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도박판에 앉게 된다고 한다.

경제력이 없는 도박 중독 청소년은 용돈을 탕진하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해 돈을 타내고 그걸로도 성이 차지 않으면 주위에서 돈을 빌린다.

불법 대부업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 진을 치고 이런 중독 청소년을 노리는데, 이들에게 돈을 빌렸다가 상상도 못 한 끔찍한 경험을 한 경우도 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도박에 빠졌다는 김재영(가명 19) 군은 SNS를 통해 알게 된 대부업자에게 여러차례 대출을 받았고 갚아야 할 돈이 3천만원까지 늘어났다.

흔쾌히 돈을 빌려줬던 대부업자는 김 군이 돈을 갚지 않자 돌변했다. 협박 끝에 그는 김 군에게 동남아시아에 있는 도박장에 가서 일하라고 압박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면 죽이겠다는 협박도 했다.

위협을 느낀 김 군은 고민 끝에 가족들 몰래 동남아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몇 년 고생해 빚을 청산하고 새 출발 하자고 마음먹었던 그는 그러나 현지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닥쳤다.

현지 도박장 관계자라는 이들은 김 군을 감금하고 여권과 소지품을 빼앗았다. 다행히 그는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극적으로 탈출했고, 현지 대사관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 군은 다시는 도박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중독의 힘'을 이겨내지 못했다. 끝내 도박을 끊지 못한 김 군은 마약 밀수에 손을 댔고, 지금은 마약사범으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 불법대부업자, 청소년·부모 개인정보 담보 요구…돈 못 갚으면 정보 유출 '처형'

기자 : 미자(미성년자)는 얼마까지 되나요?

대부업자 : 얼마 필요하세요?

기자 : 20(만원)이요.

대부업자 : 고등학생이신가요?

기자 : 네.

대부업자 : 미성년자여서 부모님 인증이 필요해요. 부모님 폰 가지고 올 수 있어요?

기자 : 어디로요?

대부업자 : 그냥 부모님 핸드폰만 들고 방으로 들어가요.

기자 : 지금은 못 할 것 같은데 방법만 알려주시면 이따 새벽에 해볼게요.

대부업자 : 그거는 우리 업체에서만 할 수 있는 거라서 방법을 알려줄 수가 없어요.

SNS에서 미성년자로 가장한 기자와 대부업자가 나눈 대화 내용이다. 대부업자는 한 달 이자율이 5%밖에 안 된다면서 꼭 연락하라고 했다. 기자가 연락을 미루자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메시지 공세를 펴더니, 끝내 전화를 걸어와 협박하듯 대출을 종용했다.

대부업자들은 돈을 빌리려는 청소년에게 부모의 신분증 또는 휴대전화, 금융정보 등을 담보로 요구한다. 주민등록증이 없는 경우 부모와 관계를 증명하는 가족관계 증명서도 요구한다.



이렇게 대부업자에게 넘긴 개인정보는 청소년이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컴퓨터 등 사용 사기 혐의로 구속한 사기범들은 대출을 미끼로 미성년자를 유인해 부모 명의의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받아낸 뒤 7억5천여만원을 대출받아 가로챘다.

이들은 미성년자가 넘긴 휴대전화에 원격조종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부모 신분증 사진으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금융기관 사이트에서 비대면 대출을 받고 마이너스 통장을 발급받았다고 한다.

또 대부업자들은 빚을 갚지 않는 청소년이 생기면 담보로 확보했던 개인 정보를 SNS 등에 무차별 유포한다. 그들은 이를 '처형'이라고 부른다.

계약 당시에 촬영한 얼굴 사진과 주민등록증 사본, 전화번호 등이 고스란히 온라인에 공개된다. 그 순간 해당 청소년은 협박 전화와 문자에 시달리고, 도박 중독 사실이 주변에 알려져 고통받는다.







업자들은 SNS 등에 개인 정보를 유출한 뒤 욕설과 살해 위협이 담긴 '댓글 테러'를 가하기도 한다.

대부업자에게 빌린 30만원을 도박으로 날리고 연락을 끊었던 오 모(19) 군도 '처형' 대상이었다.

대부업자들은 SNS 게시판에 오 군의 주민등록증 사진과 휴대전화 번호, 은행 계좌번호를 유포했다. 협박 전화와 문자가 빗발치자 그는 전화번호를 바꿨지만, 아직도 그의 주민등록증 사진은 SNS에 떠돌아다니고 있다.

SNS상의 대출그룹 게시판 등에서는 오 군처럼 대부업자들의 '온라인 처형' 대상이 된 청소년들의 신상정보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소년들이 운영하는 '작업대출'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학교 등에서 마주치는청소년 사이에 이뤄지는 작업 대출에서는 빚 독촉에 폭력이 동원된다.

이주환(가명·17) 군은 도박을 시작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부터 빚 독촉에 시달렸다. 세 차례에 걸쳐 400만원을 빌린 그가 돈을 갚지 못하자 작업 대출을 해준 친구들은 부모에게 알리겠다거나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고 폭행도 서슴지 않았다.



◇ 빚 독촉에 시달리는 청소년들 범죄 저질러…강도 소년범 '도박 비용' 동기 16.7%



도박 중독 청소년을 노리는 대출은 경제적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2차 범죄로 몰아가기도 한다.

고등학교 3학년생이던 3년 전 도박에 발을 담갔다는 A(22)씨도 이런 경험을 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던 A씨는 속칭 '중고나라론'이라는 사기에 손을 댔다.

온라인 중고 물품 판매 사이트에 허위 매물을 올리고 돈만 받아 챙기는 수법이다. 그렇게 수중에 들어온 돈으로 도박을 해 모두 잃으면 연락을 끊고, 다행히 돈을 따면 돈을 조금씩 갚아나가는 방식이다.

A씨는 명품 옷과 시계, 금붙이 등을 판다는 허위 광고를 하고 20여 명에게 돈을 받아 챙겼다. 구매자가 항의하면 핑계를 대며 시간을 끌었다. 돈을 따면 물건을 사서 구매자에게 보내기도 했지만, 돈을 잃으면 또다시 같은 수법의 사기로 돌려막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결국 그는 사기 혐의로 기소돼 처벌을 받았다.

B(17)군은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 금고에 손을 댔다. 금고에서 50만원을 몰래 빼냈다. 도박판에서 돈을 따 훔친 돈을 채워 넣으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는 편의점 금고에서 빼낸 돈을 모두 날렸고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점주는 그를 해고했다.





B군처럼 도박 비용을 마련하거나 빚을 갚기 위해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는 허다하다. 부모에게 그리고 학교에 도박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쓸수록 '2차 범죄'의 유혹은 더 커진다.

대검찰청이 발행한 2018년 주요 범죄 유형별 특성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하 소년범의 경우 도박 비용 마련 목적의 절도·강도 범죄 비중이 성인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절도 범죄 동기 중 '유흥·도박 비용 마련' 비중은 소년범이 5.6%로 성인범(1.2%)의 5배에 육박했다. 강도 범행 동기 중 '유흥·도박 비용 마련' 비중은 소년범이 무려 16.7%에 달했다. 성인범의 경우 그 비율이 6.3%였다.

fortun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