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따블라디] 섬 곳곳 포 설치한 군사 요새 '효자 관광지' 변신

입력 2020-06-21 09:09
[에따블라디] 섬 곳곳 포 설치한 군사 요새 '효자 관광지' 변신

서울 여의도 32배 극동 루스키섬…40m 지하요새·포대 등 빼곡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 열린 APEC 계기 극동 주요 관광지로 탈바꿈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형우 특파원 = "100년 전에는 러시아 부동항을 지키는 거대한 요새였다면, 지금은 동방 관광의 핵심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9일 러시아 연해주(州) 국립 블라디보스토크 요새박물관 전시담당자인 니콜라이 부다예비치(60)씨는 극동에서 루스키섬이 차지하는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연합뉴스 기자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에서 차량으로 33㎞ 떨어진 여의도 면적(2.9㎢) 32배 정도의 크기인 루스키섬(면적 97.6㎢의)은 과거 군사적 요충지로 1991년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민간인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곳이었다.



이날 기자는 부다예비치씨와 함께 루스키섬에 위치한 포스펠로프 포르트(요새)를 찾았다.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에서 출발, 차를 타고 루스키섬의 외딴 산속으로 30분가량 이동해 요새에 도착하자 거대한 콘크리트로 뒤덮인 오래된 하얀색 요새 건물이 기자를 맞이했다.

150m 높이의 산속에 위치한 건물의 외벽에는 요새의 나이를 짐작게 하는 '1903'이라는 숫자가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1903년도에 지어진 건물의 콘크리트 벽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듯 곳곳이 무언가에 맞은 듯 파여있었다.

숫자 바로 밑에는 신기하게도 예수의 그림이 놓여 있었다. 이는 과거 이 요새에 주둔했던 병사들이 부대의 수호신으로 세워놓은 상징물이라고 부다예비치씨는 설명했다.



콘크리트 요새 내부에는 60∼70㎡ 규모의 병사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4∼5개의 방으로 구획돼 있었다.

이곳을 러시아군은 포탄 등 중요한 군사 물품을 보관하는 데 주로 사용했다.

요새 바닥에는 거미줄처럼 연결된 지하 통로가 있는데 길이만 40m에 달한다고 부다예비치씨는 설명했다.

이 요새 말고도 루스키섬 곳곳에는 대규모 포대와 요새들이 즐비하다.

블라디보스토크와 본섬을 연결하는 3.1㎞ 길이의 루스키대교 밑에는 대규모 포대가 설치돼있다.

이 포대는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총회를 앞두고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모형으로 다시 제작해 설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정 러시아는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를 지키기 위해 도시 자체를 요새화했다.

제정 러시아가 러·일 전쟁(1904∼1905년)에서 패배하면서 극동함대의 모함으로 삼았던 '포르투 아르투르'(중국명 뤼순·旅順)가 일본에 넘어가면서 요새화에 대한 집착은 더욱 심해졌다.

자칫하다가는 남은 부동항인 블라디보스토크마저 일본에 빼앗길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제정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에 진입하는 길목이었던 루스키섬을 비롯해 주요 지점마다 군함을 격침할 수 있는 대규모 대포 진지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부다예비치씨는 "1900년대 초기부터 1914년까지 루스키섬을 포함해 블라디보스토크 주변에 세운 요새 시설만 113개에 달한다"며 "당시 제정 러시아(1721~1917) 입장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를 일본군으로부터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했었다"고 강조했다.

군사기지로서의 명맥은 1991년 옛 소비에트연방(소련)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이어진다.





하지만 민간인들의 출입이 허용되고 교통이 편리해지면서 대규모 포대와 요새들은 주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아픈 과거가 국내외 관광객들을 끌어당기는 황금거위가 된 셈이다.

실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 속에서도 기자가 찾은 당일 요새에는 관광객들로 보이는 러시아인들이 무리를 지어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을 포함해 해외관광객들의 주요 방문코스였다고 부다예비치씨는 말했다.





군사적 요충지에 머물렀던 루스키섬은 2012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APEC)를 통해 러시아 극동의 주요 관광지로 부상했다.

APEC 개최 시기를 계기로 러시아 정부가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이때 러시아에서 가장 큰 아쿠아리움 등 주요 관광시설이 정비되기도 했다.

여기에 바닷가 산책 코스 등 빼어난 자연환경으로 명실상부한 러시아 극동의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최근 사실상 루스키섬과 연결된 옐레나섬과 블라디보스토크 도심을 연결하는 대규모 다리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등 러시아 정부는 루스키섬에 대한 투자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vodcas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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