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서 '차테크 광풍'…사전판매 경쟁률 920대 1

입력 2020-06-09 17:30
이란서 '차테크 광풍'…사전판매 경쟁률 920대 1

미국 제재로 리알화 가치 폭락에 자동차로 자산 보호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이란에서 자동차로 재산 가치를 보호하거나 늘리려는 이른바 '차테크'가 뜨겁게 가열되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금과 함께 실물 안전 자산으로 통하는 자동차에 돈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간) 이란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이란 최대 완성차 회사인 이란호드로와 사이파가 접수한 사전 판매에 신청이 쏟아져 경쟁률이 수백대 1까지 치솟았다.

이란에서 인기있는 소형차 티바-2 모델은 2천500대 판매에 230만명이 사전 예약을 신청해 92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다른 인기 차종인 푸조 파르스는 4천대 판매에 239만명이 신청해 약 600대 1, 라나는 516대 1까지 경쟁률이 올라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운 좋게 사전예약에 '당첨'돼도 차는 1년 이상 기다려야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도 사전 예약의 경쟁률이 높은 것은 이를 통해 살 수 있는 자동차 가격과 시중 가격의 차이가 커 차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률이 가장 높은 티바-2의 경우 사전 예약 가격은 한화로 약 530만원이지만 현재 시중 가격은 42% 높은 755만원 정도다.

푸조 파르스는 사전 예약 가격(약 560만원)보다 시중 판매 가격(약 955만원)이 71%나 높다.

이란 정부는 투기 수요를 막기 위해 자동차를 2년 이상 보유해야 매매할 수 있는 강제 규정을 신설했지만 이란 국민은 리알화 가치는 계속 하락하고 자동차 가격은 오를 것으로 보는 터라 사전 예약은 '로또'로 통하는 분위기다.

이런 전망의 근거는 미국의 경제 제재가 상당 기간 지속할 것이라는 '확신과 불안'이다.

미국이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2018년 8월 대이란 경제 제재를 재개한 뒤 지난 2년간 달러화 대비 리알화 가치는 4배 이상 폭락했다.

은행에 리알화로 자산을 보유했다면 2년 만에 가치가 4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이란통계청이 공식 발표한 물가상승률이 2018년 27%, 지난해 41%라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 자산가치는 이보다 더 하락한 셈이다.

완성차와 자동차 부품·기술 역시 제재 대상 품목인 탓에 이란의 자동차 생산이 크게 위축됐고, 정부의 가격 억제 정책에도 생산량 부족과 리알화 가치 하락과 맞물려 시중 판매 가격이 급등했다.

이처럼 자동차가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되자 차명 구입, 자동차 회사와의 유착 등 불법을 동원해 자동차를 수십∼수백대씩 사재기한 일부 자산가가 사법 당국에 종종 적발되기도 한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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