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에 경찰 폭력 사태…저무는 미 소프트파워

입력 2020-06-02 11:50
수정 2020-06-02 18:10
트럼프 리스크에 경찰 폭력 사태…저무는 미 소프트파워

FP "트럼프 취임 후 줄어들던 국가 위상, 경찰 폭력으로 더 훼손돼"

(서울=연합뉴스) 권혜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흔들리던 미국의 위상이 경찰의 폭력과 인종 차별로 한층 더 훼손됐다고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1일(현지시간) 진단했다.

한때 미국은 민주주의와 인권의 수호자 격으로 여겨졌으나 미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눌려 흑인 남성이 숨지는 사건으로 촉발된 전국적인 시위와 이에 대한 경찰의 무자비한 대응이 이런 인식을 통째로 뒤흔든 것이다.

지난 주말 사이 미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차를 몰고 돌진하고, 대학생들에게 테이저건을 쏘는 등 강경 진압에 나선 사실이 미 언론을 통해 보도되며 미 경찰의 만행이 전세계에 알려졌다.



이 와중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과 화상회의서 "제압해야 한다", "당신들이 제압하지 못한다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며 공권력 개입 확대를 권장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내며 충격을 더했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부정적 반응은 세계 무대에서 트럼프 대통령 통치 아래 미국의 명성이 얼마나 추락했는지를 보여준다고 FP는 보도했다.

한 유럽의 고위급 외교관은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예상보다 빨리 소멸됐다"며 "미국의 군사적인 우위나 경제적인 영향력은 여전하지만 정치적인 여력이나 소프트파워는 빠른 속도로 고갈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외교관은 이어 "이는 미국과 전통적인 가치로 연결되고자 매달렸던 전통적인 동맹국들을 어려운 상황에 몰아넣었다"고 말했다.



미 전역에서 벌어지는 시위는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와 같은 현대 자유주의 가치의 수호자로 간주됐던 미국의 뿌리 깊은 사회 문제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매개 역할을 했다는 것이 FP의 진단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미국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를 지낸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는 "이것이 우리의 지도력과 해외에서의 목소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도 외부의 시선을 인식한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들과 회의서 "다른 나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이것을 보고 다음날 그들(미국)이 만만하다고 할지 모른다. 만만한 사람이 돼서는 안된다"며 공권력 강화를 주문했다.

또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미국의 경쟁자들이 이 상황을 이용하려 한다며 "중국이든 짐바브웨든 모든 우리의 해외 적국들에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와 당신들의 차이점은 (미국에선) 조지 플로이드를 살해한 경찰이 수사를 받고 기소돼 공정한 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지속하자 급기야 해외에 있는 미 외교관들 일부가 목소리를 내 본국을 두둔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브라이언 니콜스 짐바브웨 주재 미 대사는 "자유주의 속에 태어난 미국은 항상 더 나은, '언덕 위의 빛나는 도시'(shining city on a hill)가 되기를 열망하며 그것이 바로 내가 국가를 위해 봉사하게 된 이유"라는 내용의 공개 서한을 내고 미국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옹호했다.

그러나 경찰의 권력 남용이나 전국적인 시위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지도력 실패는 이미 넝마가 된 미국의 명성에 일격을 더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앞세워 파리기후협약과 항공자유화조약(OST) 등 국제적인 협약을 잇달아 탈퇴하고, 동맹국을 반복적으로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이미 미국의 영향력이 날로 줄어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기존 동맹국들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지난달 미국이 세계보건기구(WHO)와 절연을 선언했을 때 주요 동맹국 중 어느 곳도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으며 다음달 캠프 데이비드에서 개최하려 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일정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참가 거부로 연기됐다.

유럽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마저 이날 백악관이 러시아 G7 재가입을 시도하려 한다면 이를 막겠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토머스 그린필드 전 차관보는 미 경찰의 폭력 행위와 이를 문제 삼은 시위는 "큰 퍼즐의 조각일 뿐"이라고 해석했다.

"세계에서 우리의 형세는 이미 줄어들었으며 이번 사안은 다른 국가들이 우리의 지도력에 물음을 제기하는 하나의 이유를 더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미국의 이런 행보로 미국의 전통적인 동맹국은 물론 나머지 국가들도 중국과 미국이라는 양대 강국 사이에서 어느 쪽에 줄을 설지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고 FP는 전했다.

아시아 출신 한 고위급 외교관은 "믿을 수 없고 점점 더 모든 걸 '거래'하려는 전제 군주적인 국가(미국)와 거래 관계에서 믿을 수 있지만 지독하게 독재적인 부상국(중국) 사이에서의 선택"이라고 현 상황을 빗대 설명했다.

luc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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