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김정은 상태 안다면서 말 아낀 이유는…북 자극 피한듯
"상황 잘 안다" 꾸준히 언급…"괜찮길 바란다" 발언해 오락가락 지적도
재선가도 북한발 돌출변수 관리 해석도…대선앞 김정은 건강이상설은 불식
(워싱턴=연합뉴스) 류지복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20일(현지시간) 언론 보도를 통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불거진 이래 평소답지 않게 말을 아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쏟아지는 언론의 질문에 "언급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반복하며 구체적인 평가나 설명을 삼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건재 사실이 확인된 미국시간 1일 역시 "아직 언급하지 않는 게 좋겠다", "적절한 시점에 이야기할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만 답했다. 평소 취재진 질문에 직설적인 화법으로 답하던 것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다.
국무부도 연합뉴스의 관련 질의에 반응하지 않았다.
별다른 이상 징후가 없다는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잘 있기를 바란다", "모든 것이 괜찮기를 바란다"며 마치 이상이 있다고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내놔 혼선을 빚는다거나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만일의 사태"라는 말까지 사용해 북한의 이상징후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 같은 뉘앙스를 풍기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CNN방송의 위중설 기사가 부정확한 허위보도라고 지적하고, 27일부터는 "어떻게 지내는지 잘 알고 있다"는 데 무게를 실어 꾸준히 발언했다. 29일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라고까지 말했다.
특히 한국 정부가 초기부터 북한에 특이 동향이 없다고 밝히고 한미 간 정보 소통이 꾸준히 이뤄진 상황을 감안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말을 아낀 것은 신중론 쪽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포스트는 김 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내기 며칠 전 한국 정부가 김 위원장이 사망했다는 언론보도를 반박하는 정보를 미국과 공유했다고 미 관계자를 인용해 이날 보도했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행방과 건강에 관한 의문이 불거진 후 김 위원장 관련 주제에 대해 이례적으로 자제해 왔다"고 평가했다.
이런 태도는 미국이 북한과 비핵화 협상을 추진 중인 가운데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최고존엄'에 관한 문제를 놓고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트럼프 대통령 스스로 "아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 "사랑에 빠졌다"며 김 위원장과 각별한 관계와 신뢰를 강조한 상황에서 북한 내부 상황에 대한 언급이 불필요한 갈등을 빚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
특히 오는 11월 재선 도전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북한 변수가 대선 가도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관리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진 이후 김 위원장이 '새로운 길', '신형 전략무기' 엄포까지 놓은 터라 북한이 추가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같은 도발에 나선다면 선거전의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대선을 앞두고 꽉 막혀있는 비핵화 협상의 성과를 내지는 못할지언정, 북한이 악재가 되지 않도록 북한의 자극적 행동을 묶어둘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김 위원장의 건강상태 질문에 "북한 지도부에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의 임무는 비핵화"라며 거의 비슷한 표현으로 수차례 비핵화 의지를 강조한 것도 불필요한 도발을 자제하라는 뜻을 에둘러 담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세 차례 만남을 통해 개인적 친밀감을 형성했다고 말했지만, 아직 북한 핵무기 감축에 관한 분명한 합의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김 위원장의 건재가 확인됨에 따라 대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의 건강을 둘러싼 북한발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의미도 있다.
만에 하나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설이 사실로 드러나고 북한 권력구조에 큰 변화가 생긴다면 가뜩이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유행으로 마음이 급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예측하기 힘든 또다른 난제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이다.
AFP통신은 김 위원장의 최근 부재가 북한의 핵무기와 누가 김 위원장을 승계할지에 대한 국제적 공포감을 촉발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신중한 태도에는 김 위원장의 행방이나 상태를 너무 구체적으로 언급할 경우 미국의 정보 자산이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jbry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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