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블 망원경서 사라진 '포말하우트b'는 외계행성 아닌 먼지구름

입력 2020-04-21 11:31
허블 망원경서 사라진 '포말하우트b'는 외계행성 아닌 먼지구름

얼음 천체 충돌이 만든 먼지구름…"약 20만년 전 200㎞ 크기"



(서울=연합뉴스) 엄남석 기자 = 10여년 이상 외계행성으로 알려졌던 '포말하우트(Fomalhaut)b'가 애초 행성이 아니었으며, 두 천체가 충돌해 만들어낸 미세한 먼지구름이라는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포말하우트b는 지난 2008년 지구에서 약 25광년 떨어진 남쪽물고기자리의 가장 밝은 별인 포말하우트 인근에서 발견됐으며, 직접 관측된 1세대 외계행성 중 하나로 꼽혀왔다.

발견 당시에도 다른 외계행성과 달리 허블 우주망원경에 움직이는 점으로 포착될 정도로 빛이 밝고, 적외선은 포착되지 않아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행성을 둘러싼 먼지구름에서 유발된 현상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허블망원경에 포착됐던 점이 점차 희미하게 사라지면서 외계행성이 아니라 천체 충돌의 결과라는 새로운 주장이 나오게 됐다.

허블우주망원경을 위탁받아 운용하는 '우주망원경과학연구소'(STScI)와 애리조나대학 등에 따르면 이 대학 천문학과 스튜워드 천문대의 조지 리케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포말하우트b 관측 자료를 재분석해 행성 크기의 천체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리고 관련 논문을 미국 국립과학원 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허블 우주망원경이 관측한 자료를 모두 재분석했으며, 지난 2014년 허블이 포착한 이미지에서 포말하우트b가 사라지고 이전 이미지에서도 점점 희미해져 온 것을 결정적 증거로 받아들였다.

논문 제1저자인 스튜워드 천문대의 안드라스 가스파르 연구원은 이를 "포말하우트b는 진짜 행성이라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하고 있었다"고 표현했다.

연구팀은 관련 자료를 종합 분석해 포말하우트b가 행성이 아니라 두 개의 거대한 천체가 충돌해 만들어진 먼지구름이 서서히 확산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연구팀은 이 충돌이 포말하우트b가 허블에 최초로 포착된 2004년에서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점에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이 충돌이 만들어낸 파편 구름은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 수준인 1μ(미크론) 입자들로 구성돼 허블 망원경이 포착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지만, 현재 태양~지구를 넘는 거리까지 확산한 것으로 추정됐다.

포말하우트b가 행성들이 보이는 타원 궤도가 아닌 쌍곡선과 같은 이탈궤적을 보여온 것도 행성이 아니라는 점을 나타내는 증거로 제시됐다.



연구팀은 "최근 형성된 대형 먼지구름이 포말하우트 별의 강력한 복사에너지에 노출돼 이런 궤적을 만들어 냈다"면서 "우리 모델은 지금까지 관측된 먼지구름 팽창률과 빛의 감소, 궤적 등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연구팀은 포말하우트b의 위치가 별을 둘러싼 거대한 얼음 고리 안에 있는 점을 근거로 충돌 천체가 태양계 외곽의 카이퍼벨트에 모여있는 얼음 천체들처럼 얼음과 먼지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분석하면서 혜성과 같은 이 천체들이 약 200㎞ 크기로 약 20만년 전에 충돌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가스파르 연구원은 허블 망원경이 포착한 것이 충돌이 아닌 그 결과물이지만 "이런 충돌이 극히 드물어 충돌의 증거를 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했다.

리케 교수는 "포말하우트 항성계는 외계행성과 항성계의 진화에 관한 이론을 검증할 수 있는 최고의 실험실"이라면서 "다른 행성계에서 일어난 천체 간 충돌의 증거를 갖고있지만 이처럼 자세히 관측된 것은 없으며, 이는 행성이 서로를 어떻게 파괴하는지에 관한 청사진"이라고 했다.

연구팀은 차세대 망원경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내년 봄에 예정대로 배치되면 포말하우트 항성계에 대한 추가 관측에 나설 계획이다.

eomn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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