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외무 "팬데믹 후 세계 더 나빠질것"…미중갈등 증폭 우려
르몽드 인터뷰서 "코로나19로 미·중 패권경쟁 구도 심화"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구도를 심화시키고 다자주의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프랑스 외무장관이 지적했다.
장이브 르드리앙 프랑스 외무부 장관은 20일(현지시간) 일간 르 몽드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최근 수년간 국제질서를 흔들어온 분열의 증폭을 목도하고 있다"면서 "이번 팬데믹은 강대국들 간 투쟁의 다른 방식으로의 지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국과 미국의 경쟁구도 악화를 비롯한 이런 투쟁은 우리가 이번 사태 이전부터 경험한 세력관계가 굳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팬데믹 이후의 세계는 그 전과 비슷하면서도 더 나빠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가고 나면 미·중 간 갈등을 비롯해 그동안 쌓여온 국제관계의 분열적 요소들이 더 적나라하게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후 서방 자유주의 질서의 리더였던 미국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국제무대에서 행사했던 전통적인 리더십을 축소하는 것에 대해 그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르드리앙은 "미국은 세계 단위에서 리더십을 행사하는데 주저하고 있는 초강대국"이라면서 미국이 고립주의로 회귀해 인류의 중대한 문제들에 대한 공동행동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미국이 스스로 역할을 축소함에 따라 다른 초강대국 중국이 등장해 "'내가 리더십을 가진 강대국'이라고 말하고 싶은 상황이 조성됐다"고도 덧붙였다.
르드리앙은 "우리는 미국이 책임을 다하고 동맹국들과 신뢰의 관계를 지켜나가기를 바란다"고 강조하고 "유럽 역시 리더십의 운명을 찾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이 중국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작년 중국을 유럽의 파트너이자 경쟁자로 규정한 것을 들며 "그렇다고 해서 중국과 프랑스의 협력관계가 저해되는 것은 아니지만, 중국은 가끔 EU 내 분열을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프랑스 주재 중국대사관이 프랑스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한 것에 대해서는 "중국이 존중받기를 바라는 것처럼 우리도 존중받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주불중국대사관은 대사관 홈페이지에 지난 12일 '왜곡된 진실의 복원-파리에 부치는 한 중국 외교관의 관찰'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코로나19에 대한 서방의 대응을 '느림보'라고 비판하고 프랑스의 노인요양시설 직원들이 "한밤중에 자신의 임무를 포기해 수용자들을 굶고 병들어 죽게 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프랑스 외무부는 이 글에 항의하기 위해 곧바로 루사예(盧沙野) 주불중국대사를 초치했다.
이 사건 외에도 프랑스와 중국은 코로나19의 대처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 17일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중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처했다고 말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라며 "중국에서 일어났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들이 확실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투명성과 거리가 있는 중국의 권위주의 통치체계를 고려할 때 공식 발표되는 집계만을 놓고 중국의 위기 대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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