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에 백기 든 아베…올림픽 연기로 정치적 부담 커져
임기 내 개최 '1년 연기' 실현으로 일단 정치적 치명상은 피해
최대 정치 유산 실현 미뤄져…올림픽 후 중의원 해산도 어려워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의 여파로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이 1년 연기되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최대 정치적 유산 실현도 미뤄지게 됐다.
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지만, 올림픽 이후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 실시로 정치적 주도권을 유지한다는 아베 정권의 구상도 물 건너갈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부흥 올림픽'으로 명명한 도쿄올림픽을 계기로 경제를 활성화해 '아베노믹스' 성과를 극대화하려던 계획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 '아베노믹스' 실현에 타격
아베 총리는 2013년 올림픽을 유치한 이후 도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 일본이 2011년 동일본대지진을 완전히 극복한 모습을 전 세계에 보여주겠다는 메시지를 지속해서 발신해왔다.
아울러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새로운 헌법을 시행하고 싶다면서 자신의 최대 정치적 과제인 개헌도 올림픽과 결부시킨 바 있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실현하는데도 올림픽 특수에 기대를 걸고 있다.
아베 총리가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도 예정대로 도쿄올림픽을 개최하겠다고 고수해온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아베 총리는 계획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도쿄신문은 25일 자 '총리 주도 올림픽의 난국'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총리는 스스로 올림픽 유치를 주도해 정권 부양에 이용해왔다"며 "사상 처음으로 연기된 올림픽을 무사히 개최·운영할 수 있을지 개최국 정상으로서의 능력을 시험받게 됐다"고 보도했다.
◇ 올림픽 1년 연기 트럼프와 합작품?
일단 아베 총리는 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아울러 국제올림픽위원회(IOC)로부터 1년 연기 약속을 받아내 2021년 9월에 끝나는 자신의 총리 임기 내에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 일본 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무관중으로 개최하는 것보다는 1년 연기하는 쪽이 좋은 선택지"라고 발언한 것에 주목했다.
요미우리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그런 발언 이후 아베 총리가 연기를 향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도쿄올림픽 1년 연기는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합작품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아베 총리는 16일 열린 G7(주요 7개국) 정상 화상회의에선 도쿄올림픽을 '완전한 형태'로 실현하겠다는 의지를 밝혀 연기 가능성을 시사했다.
IOC가 "연기를 포함해 4주 이내에 결론을 내겠다"고 밝히고 불과 이틀 뒤인 24일에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의 전화회담을 통해 1년 연기에 합의를 했다.
국내외에서 올림픽 연기 목소리가 커지자, 아베 총리는 발 빠르게 움직여 자신이 주도적으로 1년 연기를 끌어내는 모양새를 연출했고, 정치적 타격도 피해갔다.
◇ 올림픽 연기 후 과제 산적
다만, 올림픽 연기에 따른 막대한 비용과 장소 확보, 이미 판매한 티켓 및 선수촌 아파트 등 풀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아베 총리는 코로나19 확산과 그에 따른 경기침체에도 대응해야 한다.
경기가 급격히 침체하면서 아베노믹스의 핵심 중 하나인 소비세 증세를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을 정도로 아베의 경제정책은 흔들리고 있다.
아베 정권은 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발판으로 올해 가을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총선거를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지만, 이 역시 어려워졌다.
코로나19 확산이 계속되면 올해 하반기 중의원 해산과 그에 따른 총선거는 할 수 없게 되고, 올림픽을 앞둔 내년 상반기에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아베 총리 임기가 끝날 때까지 총선거를 실시하지 못하고, 경제도 어려워지면 정치적 주도권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내년 9월 자신의 임기가 끝나고 치르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힘들어질 수 있다.
앞으로 코로나19 상황 및 경기침체 대응과 올림픽 연기에 따른 혼란 수습 여부가 아베 정권의 명운을 좌우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일본 정가에선 아베 총리가 '포스트 아베'에 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코로나19가 잠잠해지는 시기, 올림픽이 그리 가깝지 않은 시기에 중의원 해산을 단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hoju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