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조선 억류·교수 체포…핵합의 살리자는 유럽-이란 불협화음

입력 2019-07-16 20:06
유조선 억류·교수 체포…핵합의 살리자는 유럽-이란 불협화음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미국의 탈퇴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가 존폐 위기에 처한 가운데 합의 당사자인 유럽과 이란이 예민한 시점에서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이달 4일 스페인 남단 영국령 지브롤터 당국이 시리아로 향한다는 이유로 이란 유조선 1척을 억류하고 조사에 나서면서 마찰음이 나왔다.

이란 군부는 걸프 해역을 지나는 영국 상선을 '보복 억류'하겠다고 경고했고, 이어 영국 유조선을 이란 혁명수비대가 나포하려 했다가 실패했다는 보도가 미국 언론을 통해 나왔다.

영국 정부는 '나포'나 '억류'라는 용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영국 유조선을 호위하던 자국 구축함이 항로를 방해하려는 이란 혁명수비대의 무장 쾌속정들에 구두로 경고했다고 주장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영국 정부는 12일 영국 상선의 안전한 항해를 지킨다는 이유로 걸프 해역에 구축함 1척을 더 배치하겠다고 강경하게 대응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16일 "영국은 우리의 배를 훔치는 해적질을 저질렀다"라며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라고 연설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발언이니만큼 정부와 군은 이를 실행할 공산이 크다.

이런 와중에 핵합의 서명국인 프랑스의 파리정치대학의 이란계 프랑스인 파리바 아델카 교수가 이란에서 체포되는 일이 알려졌다.

프랑스 외무부는 15일 이를 발표했으며 이란 사법부도 16일 체포 사실을 확인했다.

붕괴로 치닫는 핵합의를 살리려면 미국의 경제 압박에 맞서 양측이 협력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부정적인 사건은 양측의 '핵합의 공조'에 좋지 않은 신호를 줄 수 있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의 3개 핵합의 서명국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이란과 대화하려는 정부라는 점에서 일부에서는 아델카 교수의 체포로 유럽과 이란의 의사소통 통로가 좁아질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이란은 유럽에 9월5일까지 시한을 제시하면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재개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실행하지 않으면 우라늄을 20%까지 높일 수 있다고 예고했다.

이는 사실상 핵무기 개발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선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과 이란 사이에 낀 유럽 측은 미국의 제재를 어기고 이란의 요구대로 원유를 수입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유럽은 의약품, 식품 등 비(非)제재 품목에 한정해 이란과 교역하는 정도로 이란이 계속 핵합의를 지키도록 설득할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이란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란은 유럽에 말로만 그치지 말고 핵합의를 실제로 이행하라고 압박하면서 '비례의 원칙'을 강조한다. 유럽이 지키는 만큼 이란도 핵합의를 지키겠다는 것이다.

유럽이 핵합의 이행에 미온적인 것은 적당한 명분이 생기면 이란에 책임을 돌리고 핵합의에서 발을 빼려는 것이라는 부정적인 해석도 일각에서 나온다.

이란 유조선 억류나 교수 체포와 같은 사건이 핵합의와는 경중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사건이지만 적어도 유럽도 핵합의에서 거리를 두는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이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핵합의를 이행하지 않는다고 보는 이란에서는 핵합의를 유지하기 위해 유럽의 비위를 맞추는 유화적인 태도보다는 강경하게 맞서는 편이 대내외적으로 이득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익명을 요구한 테헤란의 한 정치평론가는 연합뉴스에 "이란 지도부는 유럽의 설득을 받아들이면 탄도미사일과 역내 개입 등 사안에서 계속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고 생각하는 듯하다"라며 "이란은 핵합의가 붕괴할 수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각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hsk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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