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파행 못 피한 최저임금 심의…개편안 탄력받을 듯
노사 번갈아 불참…박준식 위원장 "민주적 절차 너무 가볍게 생각"
(세종=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최저임금위원회가 12일 우여곡절 끝에 내년도 최저임금을 의결했지만, 최저임금 심의 과정에서 빚어진 잇단 파행은 예년과 별 차이가 없었다.
노사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전망이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13차 전원회의에서 내년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2.9% 오른 시간당 8천590원으로 의결했다.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에 본격적으로 착수한 것은 지난달 19일 제3차 전원회의였다. 최저임금 심의 법정 기한(6월 27일)이 1주일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앞서 지난 5월 공익위원 8명의 교체로 심의가 다소 지체됐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 출발은 나쁘지 않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근로자위원 4명을 포함한 노·사·공익위원 전원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지난해 민주노총 근로자위원들이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발해 최저임금 심의 과정을 처음부터 줄곧 보이콧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그러나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도 노사 어느 한쪽의 집단 퇴장과 불참에 따른 파행을 피하지는 못했다.
최저임금 심의를 먼저 파행에 빠뜨린 것은 사용자위원들이었다. 사용자위원 9명은 지난달 26일 제5차 전원회의에서 최저임금의 업종별 차등 적용 안건이 부결되고 월 환산액 병기 안건이 가결된 데 반발해 집단 퇴장했다.
이들은 제6차 전원회의에 전원 불참했고 제7차 전원회의에 7명만 복귀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소속 사용자위원 2명은 불참을 계속하다가 제10차 전원회의에야 참석했다.
박준식 위원장은 사용자위원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민주적 절차에 따른 결정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 깊은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지난 9일 제10차 전원회의에는 근로자위원들이 전원 불참했다. 사용자위원들이 내년도 최저임금의 최초 요구안으로 8천원(-4.2% 삭감)을 제출한 데 대한 항의 표시였다. 근로자위원들은 다음 날 제11차 전원회의에 복귀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노사 양측이 팽팽한 대립을 계속하다가 어느 한쪽이 심의 과정에 불만을 품고 집단 퇴장하거나 불참하는 것은 거의 해마다 되풀이돼온 현상이다.
국내에서 최저임금제도를 처음으로 시행한 1988년 이후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표결 없이 합의로 의결한 것은 7번에 불과하다.
노사가 합의점을 찾지 못해 표결로 의결한 것은 올해를 포함해 26번이다. 이 가운데 노사 어느 한쪽이 표결에 불참한 적이 17차례나 된다. 경영계는 9번, 노동계가 8번 불참했다.
최저임금 심의 법정 기한을 지킨 것도 지금까지 8번밖에 안 된다.
류장수 전 최저임금위원장은 지난 5월 사퇴 의사를 밝힌 기자간담회에서 "어떤 경우에도 (회의에) 불참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며 심의를 방해하는 집단행동을 자제할 것을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관행적인 파행은 한 치의 양보 없이 대결로 치닫는 국내 노사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가 추진 중인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만 참여하는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해 전문가들이 정한 구간 내에서 노·사·공익이 최저임금을 결정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전문가 개입을 확대해 노사 협상 여지를 줄인 것으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을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21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심의부터 적용될 수 있다. 기존 결정체계에 따른 최저임금 심의는 올해가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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