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격·쇼맨십 지운 안숙선과 소리꾼들…"이게 소리고, 창극이지"

입력 2019-06-25 18:10
파격·쇼맨십 지운 안숙선과 소리꾼들…"이게 소리고, 창극이지"

국립국악원 작은창극 '꿈인 듯 취한 듯' 리뷰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일흔의 명창 안숙선이 또 한 번 새로움을 선사했다. 창극이 점점 대형화하고 서구화하는 상황에서 원형에 충실한 그의 소리는 오히려 신선했다.

25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언론에 먼저 공개한 작은 창극 '꿈인 듯 취한 듯'은 화려한 볼거리에 익숙해진 21세기 청중의 귀를 사로잡았다. 공연 티켓은 예매 개시 한 달 만에 매진됐다.

국립국악원은 1900년대 초기 창극의 한국적 본모습을 되살려보자는 취지로 2014년부터 판소리 다섯 바탕을 소재로 한 '작은 창극'을 선보이고 있다.

'꿈인 듯 취한 듯'은 국립국악원이 5년간 선보인 '춘향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심청가'의 눈대목(하이라이트)을 모아 80분으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작품은 안숙선이 분장실에서 공연을 앞두고 판소리 사설을 중얼중얼 되뇌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이를 지켜보던 어린 소리꾼은 스승에게 어떻게 하면 소리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묻고, 스승은 "글쎄…"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후 작품은 소리꾼 인생과 우리 세상살이를 교차하며 박진감 넘치게 전개된다. '춘향가'에선 애달픈 사랑과 이별을, '수궁가'의 토끼 배 가르는 대목에선 서로 속고 속이는 요지경 인간사를 투영한다. 토끼역 소리꾼 양혜원의 재치 있는 연기가 웃음을 자아낸다.





숨 가쁘게 다섯 바탕이 지나고 다시 분장실. 제자가 스승에게 다시 묻는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소리를 잘 할 수 있나요?" 스승은 연꽃으로 입을 가리고 무엇인지 모를 말을 속삭인다. 그때 밖에서 조연출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린다. "공연 10분 전입니다!" 마치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의 '낯설게 하기'처럼, 관객들은 꿈 같던 극에서 빠져나온다.

안숙선은 그 어떤 파격적인 시도나 쇼맨십도 하지 않았다. 젊은 소리꾼과 연주자들도 자극적 소리나 화려한 소품으로 눈과 귀를 현혹하지 않았다. 오직 소리를 내야 할 시점에 정확히 뿐이었다.





이번 공연이 펼쳐진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은 130석 규모로, 관객들은 맨발로 방석 위에 앉아 마이크, 스피커 등 전자 음향기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소리꾼들 원음을 그대로 감상했다.

지기학 연출은 처음부터 안숙선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썼다고 했다. 명창이 늘 목 보호를 위해 스카프를 두르고 판소리 사설을 되뇌는 군목질(목풀기)을 하던 모습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고 했다.

안숙선은 실제로 공연을 앞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냐고 묻자 "긴장의 연속"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나이가 이만큼 먹었으니 치매 증상이 오면 어쩌나 걱정이지요. 계속 대본을 보면서 미심쩍은 부분을 연습하는 수밖에 없어요. 목도 잘 풀어야지요. 목이 안 나오면 천하장사라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군목질이 나한테는 여러모로 필요합니다."

공연 마지막, 소리 잘하는 비결을 묻는 제자(유미리)에게 무엇이라 답했냐는 질문에는 소녀처럼 웃었다.

"'나도 몰라∼' 라고 했어요. 왜냐면 소리는 인생살이처럼 끝이 없거든요. 그래서 평생 관객의 박수와 추임새가 필요한 거지요. 유미리 씨도 아까 용왕과 조조 역할을 하고 나서 감정을 삭일 수 없으니까 울었잖아요? '미리처럼 하면 돼'라고 말해주었어요. 이번에 출연하는 분들은 다 잘하는 분들이니, 앞으로 훌륭한 소리꾼이 될 것 같습니다."

공연은 27∼29일 열린다. 전석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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