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실리콘밸리 동력원이었던 중국 자본, 이제는 독(毒)"

입력 2019-06-12 09:38
WSJ "실리콘밸리 동력원이었던 중국 자본, 이제는 독(毒)"

미중 무역분쟁 격화 후 중국 자본 꺼려…中 대미 FDI 54조→6조원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정성호 특파원 = 한때 미국 실리콘밸리의 자금줄로 환대받던 중국 자본이 외면당하고 있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매체는 '실리콘밸리의 동력원이었던 중국 자본이 갑자기 독이 됐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작년 말 이후 미·중 간 무역분쟁의 격화로 실리콘밸리에서 중국 자본을 꺼리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파일럿 AI 랩스'는 한 사례다.

이 회사는 중국계 벤처캐피털 '디지털 허라이즌 캐피털'을 첫 대형 투자자로 맞이했다. 하지만 작년 여름이 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미 국방부와 일한 뒤 자신들의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를 미 정부에 더 많이 팔고 싶어진 이 회사는 이 투자자와 중국 정부 간 유대가 사업에 해가 될 수 있겠다고 우려했다.

결국 이 벤처 투자사 회장에게 자사 주식을 되팔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화를 내며 이를 거부했다.

WSJ은 "중국 투자자들은 한때 그들의 자금줄 때문에, 그리고 세계 최대이자 가장 까다로운 시장에 대한 접근성 때문에 실리콘밸리로부터 환대받았다"며 "지금 그들은 갑자기 덜 환영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말 이후 중국과 연계된 벤처 투자사들은 미국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규제를 피하기 위해 사업 거래를 조정하고 있다. 아예 미국 사무소를 폐쇄하기도 했다.

또 일부 미국 벤처 캐피털들은 중국계 파트너를 버리거나 이들과 담을 쌓으려 하고 있다. 또 상당한 중국 자본을 수혈받은 일부 미국 스타트업들은 이런 투자 사실을 비밀에 부치거나 조사를 피하기 위해 중국 투자자를 쫓아내려 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시장조사업체 로디엄 그룹에 따르면 미국 스타트업에 대한 중국의 자금 지원은 지난해 초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그러나 작년 5월 이후 지원이 둔화하더니 작년 말에는 국영 중국 투자자들이 거의 다 사라졌다.

인수를 포함한 중국의 외국인직접투자(FDI)도 2016년 460억 달러(약 54조3천억원)에서 지난해에는 90%나 줄어든 50억 달러(약 5조9천억원)로 주저앉았다.

이런 기류 변화의 이면에는 미국의 경제·군사적 우위를 위협할 수 있다며 재능과 기술의 유출을 막으려는 미 정부의 노력이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미 정부의 이런 압박 작전은 작년 가을 미국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에 더 큰 권한을 부여한 법이 통과되면서 더 추진력을 얻었다. 정보기술(IT) 기업과의 거래 때 해외 투자자들이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트럼프 행정부 관리들과 일군의 상원의원은 실리콘밸리 기업과 투자자들을 사적으로 만나 중국과 거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또 미 무역대표부(USTR)가 내놓은 보고서는 파일럿 AI에 투자한 디지털 허라이즌을 지목해 이 투자사가 미국 기술을 중국에 넘기는 데 도움을 주려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허라이즌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활동적인 중국계 벤처 투자사 중 하나였다. 약 5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해 많은 미국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디지털 허라이즌의 투자자 중에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국영 '중관촌 개발그룹'의 투자 부문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파일럿 AI의 투자 철회 요청에 화를 내며 거부했던 디지털 허라이즌의 회장인 장수청 스탠퍼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작년 12월 숨졌다. 샌프란시스코 검시관은 이를 자살로 결론 내렸다.

또 실리콘밸리의 산타클라라에 있는 중관촌 사무소는 건물 외부에 걸렸던 중국어 간판과 국기(오성홍기)를 모두 없앴다고 WSJ는 전했다.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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