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정치권 새판짜기 시작, 우파 제외한 '진보연대' 성사될까
'중도우파+중도좌파+리버럴연대' vs '좌파+녹색당+리버럴연대'
(브뤼셀=연합뉴스) 김병수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제9대 유럽의회를 구성할 의원 751명을 선출하는 유럽의회 선거를 마침에 따라 EU 정치권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합종연횡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 결과 지난 40년간 EU 정치에서 주도권을 행사해온 중도 우파인 유럽국민당(EPP) 그룹과 중도 좌파인 사회당(S&D) 그룹의 과점체제가 붕괴했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커지면서 두 그룹이 의석을 대거 잃고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ADLE) 그룹과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세력, 녹색당 그룹이 크게 약진하면서 '중도 좌·우 합작'에 의한 유럽의회 과반 점유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유럽의회내 정치그룹별 짝짓기가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유럽 정치의 대대적인 지각변동을 불러올 수 있는 상황이 됐다.
이번에 유럽의회에 진출한 각 정당은 새로운 정치그룹을 구성하는 작업과 동시에 EU에서 권력을 잡기 위한 정치그룹별 짝짓기에도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여전히 유럽정치권에서 집권세력을 형성하는 주도권은 제1당을 차지한 EPP가 잡고 있다.
EPP에서 이번 선거를 이끌어온 만프레드 베버 '대표후보'(슈피첸칸디다텐)는 EU의 행정부 수반 격인 집행위원장을 차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베버 대표후보는 지난 26일 베를린에서 행한 연설에서 "유권자들은 가장 강력한 정치그룹이 집행위원장을 차지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면서 "EPP에 맞설 (유럽의회 의석)과반 체제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베버 대표후보는 "(예상의석) 숫자를 보니 리버럴그룹과 사회당 그룹, EPP에 맞서서 과반 체제를 만들 수는 없다"고 말을 수정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힘을 모으고 함께 일할 것을 요구한다"고 말해 중도 좌파인 S&D, 중도 성향의 리버럴 그룹인 ADLE와 연대해서 EU 정치를 계속 주도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시사했다.
그러나 EPP의 이런 셈법과 달리 다른 한편에서는 EU 정치에서 우파를 '왕따'시키고 중도와 좌파 세력이 연대해 새로운 집권세력을 창출하는 이른바 '진보연대' 구상이 거론되고 있다.
중도 성향인 ADLE와 녹색당, 중도 좌파인 S&D, 좌파그룹(GUE/NGL)이 손을 잡고 정치그룹에 아직 속하지 않은 의원 몇 명을 더 끌어들이면 유럽의회 의석 과반을 점할 수 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EPP는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 제1당을 차지했지만, EU 집권세력에서 완전배제되게 된다.
그동안 EPP 그룹은 유럽 정치 권력의 핵심인 집행위원장과 EU 정상회의 의장, 유럽의회 의장을 차지해왔으나 하루아침에 야당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진보연대 구상을 제안했던 S&D의 프란스 티머만스 대표후보는 유럽의회 선거 결과가 처음 발표된 뒤 "나의 제안은 테이블 위에 있다"면서 "기후변화나 사회적 정의와 같은 이슈에서 유권자들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해 진보 다수를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EU 전문매체 '유랙티브'가 보도했다.
ADLE 쪽 반응도 부정적이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선거 결과 ADLE는 어떤 집권 시나리오이든지 간에 양손에 떡을 들고 있는 모양새가 됐다.
ADLE의 대표 후보 중 한 명인 마르그레테 베스타게르 EU 집행위원은 "협상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고 유랙티브는 전했다.
베스타게르는 "지구온난화나 조세 정의와 같은 이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액션을 취할 수 있는 변화"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되면서 이제 관심은 ADLE에서 영향력이 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쏠리고 있다. 앞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끄는 'LREM'의 가입으로 ADLE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러나 아직 EPP를 지지할지, S&D를 지지할지 공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물론 또 다른 연대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EPP가 중도좌파인 S&D와 결별하는 대신에 중도인 ADLE, 녹색당 그룹과 손을 잡은 뒤 우파 정치그룹에서 일부 온건 우파 세력을 흡수할 경우 유럽의회 과반을 차지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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